한국일보

[종교인 칼럼] 김문철 목사 ㅣ 핵티비스트(Hacktivist)

2015-01-28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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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7일(수), 프랑스에서 알카에다와 이슬람 국가(IS)의 소행으로 보이는 끔찍한 테러가 있었다. 테러의 이유는 프랑스의 유명 주간지인‘샤를리 엡도(Charlie Hebdo)’가 이슬람의 창시자 모하멧을 풍자함으로 이슬람을 모욕했다는 것이다. 전세계 언론사들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샤를리 엡도를 옹호하고 나섰다. 다양한 표현은 언론의 고유 권한이며 이를 침해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박해라고 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프랑스에 사는 500만 모슬렘들의 정서를 고려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경계선 없는 이슬람 조롱의 표현은 테러를 야기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핵티비스트들이 이슬람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핵티비스트는 해커(Hacker)와 행동주의자(Activist)의 합성어다.

이들은 전세계 주요 단체나 정부의 인터넷 서버를 침범함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성취하려는 얼굴없는 단체다. 지금까지 이들의 활동은 비폭력, 사회정의, 인권존중에 집중해 있었다.


그러기에 기존 불량하고 파괴적인 핵커들과는 격을 달리한다. 그래서 바티칸 교황청등을 비롯해 여러단체가 그 활동을 암묵적으로 지지해왔다. 이 헥티비스트가 알카에다와 IS를 지목하며“죄 없는 사람들을 죽인 당신들을 우리가 복수할 것이다.”라며 모든 테러자들의 인터넷 서버를 공격할 것임을 경고하고 나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예멘에 근거지를 둔 알카에다가 추가 테러를 경고하며 다음과 같이 맞섰다:“무슬림에 대한 공격을 멈추면 안전하게 살 수 있겠지만 거부하고 전쟁을 벌이겠다면, 기쁜 소식을 기다려라." 앞으로 테러가 어떻게 발전할지 테러를 어떻게 막을지 예측이 불가하다.

그런데 테러자들과 핵티비스트의 대결을 보면 왠지 종교분쟁으로 번질 것 같은 느낌이다. 알카에다와 IS는 이슬람이고 핵티비스트는 지금까지의 활동으로 볼 때 기독교 색채가 강하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고 만일 이런식으로 계속 가게 되면 복수의 악순환을 낳지 않을까 염려된다.

바울은 신자들은 위정자나 권세자에게 순종하라고 권한다. 그 권세가 하늘에서 오기때문이다. (롬 13:1) 하지만 바울은 그 자신부터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는 핍박의 권세에는 반기를 들었다. 정부가 그에게 복음 전하기를 그만 두라고 할 때에 그 말을 무시하고 여전히 복음을 전했다. 이 말은 신자는 세상의 권세와 법에 가능한 순종해야 할 것이로되, 그 권세와 법이 더 큰 하나님의 법을 거역하면 저항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혼돈스러울때가 많다. 불의와 폭력이 우리의 삶에 파고 들때 어찌 해야 하는가? 복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참고 기다려야만 하는가? 아니면 받은만큼 되돌리는 복수를 꿈꾸어야만 하는가? 아니면 복수가 아닌 다른 지혜로운 방식을 찾아 저항해야 하는가?헥티비스트들이 사회정의와 세계 안전을 위해 21세기 최고의 통신 수단인 인터넷을 이용하여 개인이나 단체에 피해를 끼치지 않고 불의에 저항하는 것은 지혜롭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수를 언급하는 방식의 대응책은 왠지 테러를 부추기는 것 같다. 게다가 내가 믿는 종교가 아니라고 타 종교의 숭배 대상을 폄하하고 조롱함으로 수치감을 조장하는 것은 왠지 언론의 자유를 남용하는 방종이라는 느낌이다.

상대를 자극해서 테러의 빌미를 제공하거나,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원시적 복수의 대응보다는 이 땅에 악을 제어하고 의를 세워간다는 원칙속에서 저항이 진행되면 좋겠다.

이를 위한 비폭력은 필수다. 복수는 복수를 낳지만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부디 프랑스에서의 테러 위험과 그로 인한 세계적 위협들이 평화를 사랑하는 선한 이들의 지혜로운 방식으로 속히 해결되기를 기도한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롬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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