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카르페 디엠

2015-01-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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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봉 / 수필가·환경엔지니어

새해 아침, 아내가 식탁에서 말했다. “새벽 찬송 중에 갈매기만한 큰 새 한 마리가 난데없이 창 앞에 와서 화답하듯 춤을 추었어요. 기도 중에도 날개를 퍼득이며 오랫동안 머물렀어요.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40년을 함께 살며 까칠한 내 등살에 시달리고, 이민 고생을 할 만큼 했는데도 아내의 영성(靈性)은 여전히 긍정적이다. 나이 들수록 비판적이고 심사가 좁아져가는 나보다 아내가 사는 세상은 훨씬 밝고 넉넉하다. 새해 아침이어서 그랬는지 아내의 말이 유난히 가슴을 파고든다.

문득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란 시구가 생각났다. ‘현재를 살아라’란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구.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한 말로 더욱 유명해졌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필요한 걸 충분히 갖고 있다. 그런데 더 소유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미래와 과거에만 집착한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불행하다.”나는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축에 속한다. 대소사를 치를 때마다 아내는 잘 될거야, 괜찮아하며 독려하지만 나는 일단 일이 꼬일 가능성을 꼽으며 어깃장을 놓아야 직성이 풀린다. 나중 돌아보면 결국 아내 말이 맞았는데 내 고질병은 고쳐지지 않는다. 6.25때 판사셨던 아버지가 돌연히 납북당하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매일 일상이 불안했던 탓도 있으리라.


걱정이 많은 게 어머니와 내가 닮았다. 그러나 이순의 나이에도 소아병을 벗지 못한다면 평생의 교육과 훈련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최근에 짤막한 우화를 보면서 내심 뜨끔했다. “어느 아버지가 동전 닷냥을 주면서 방을 꽉 채우라고 했다. 첫째는 투덜거리며 건초더미를 사다가 방을 채웠고, 둘째는 솜을 부풀려 밀어 넣었다.

셋째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저녁 한 끼를 대접하고 남은 돈으로 초 한 자루를 사다가 방을 환하게 비추었다. 세상 사람들은 이웃을 도우며 세상을 밝히는 셋째의 고귀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은 대부분 첫째와 둘째의 삶을 답습한다. 왜 그럴까? 바로 내 이익이 우선이기 때문일 것이다.

‘카르페 디엠’은 남과 자신의 행복을 함께 배려하는 사람들. 자신을 희생하는 빛처럼 세상을 채워가는 사람에게 주신 하늘의 축복일 것이다. 이들에게 현재는 짐이 아니고 복이다. 그러나 첫째와 둘째에겐 현재가 짐일 뿐이다. 빨리 고달픈 오늘의 짐을 벗어버리고 내일 올 복을 맞이하고픈 착각 속에 사는 것이다.

한 개그맨이 TV에서 “인생의 짐을 함부로 내려놓지 말라”는 강연을 해서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힘든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생각하면 가난도 짐이고, 부요도 짐입니다. 질병도 짐이고, 건강도 짐. 책임도 짐이고, 권세도 짐입니다. 미움도 짐이고 사랑도 짐입니다. 살면서 부딪치는 일 중에 짐이 아닌 게 없습니다. 이럴 바엔 기꺼이 짐을 집시다. 다리가 휘청거리고 숨이 가쁠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짐이라면 지는 게 현명합니다.”

오늘의 짐을 벗으려고만 하지 말고 기꺼이 지고 살면 복이 된다는 말로 들린다. 아프리카 어느 원주민들은 강을 건널 때 큰 돌덩이를 진다고 한다. 급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다. 헛바퀴가 도는 차에는 일부러 짐을 싣기도 한다. 짐은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복이 됨을 아는 것이다.

등짐을 진 개그맨이 다시 말했다. “우리 아예 짐을 져 봅시다.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허리가 굽어집니다. 자꾸 시선이 아래로 향합니다. 집을 지고서는 기고만장 날뛸 수가 없습니다.” 오늘을 감사하는 자만이 짐을 복으로 바꾼다.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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