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별세한 미국장로교(PCUSA) 전 총회장 이승만 목사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미국장로교(PCUSA) 총회장과 미국교회협의회(NCCUSA) 회장을 지낸 이승만 목사가 지난 14일 별세했다.
암투병을 해오다 애틀란타 에머리대학병원에서 83세로 별세한 이승만 목사는 지난 16일 애틀란타에서 장례예식를 거행했다. 유골은 유언에 따라 한국,미국,북한에 나누어 안장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혜선 장로와 1남 2녀가 있다.
평양에서 순교한 부친 이태석 목사의 뒤를 이어 목회자가 된 그는 평양 성화신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전쟁중에 동생과 함께 남한에 피난을 내려왔다. 1956년 미국으로 이민 루이스빌 교목으로 목회를 시작했다.
지난 2000년6월 백인 일색이던 미국장로교 제212차 총회에서 동양인 최초로 총회장으로 선출됐다. 이 목사가 총회장으로 선출되자 USA 투데이, 뉴욕타임스 등이 “미국교회가 선교한 나라 출신의 목사를 교단의 수장으로 선출한 것은 교회사에 유래가 없다”며 크게 보도했었다.
1992년-1993년에는 33개 교단을 대표하는 미국교회협의회(NCCUSA)의 회장으로 선출될 때도 동양인 최초였다. 그는 한국인으로서 미국 교회의 화합과 성장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이승만 목사는 평생을 목회자로 살면서 북한과 관계 개선을 위해 헌신했다.
이 목사는 1978년 PCUSA 아시아 총무 자격으로 북한 방문을 시작한 이후 30여 차례 평양을 오가며 남북화해를 위해 힘썼다.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인권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던 이 목사는 1973년부터 25년간은 미국장로교 총회 세계선교부의 해외선교 책임자로 일하면서 한국교회와의 협력을 강화했다.
목회에서 은퇴후 1998년부터는 유니온장로교신학교에서 선교학 교수를 역임했다. 미국장로교 총회 선교부에서는 중동, 아세아 지역 부총무를 맡고 에큐메니칼 교류위원회 공동의장을 맡는 등 선교와 교계 화합에도 힘썼다.
그는 미주 한인교회 100주년을 기념하고 이에 공헌한 인사와 단체를 발굴해 시상하는 미한백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돼 특별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또 이 목사는 2010년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시에서 열린 PCUSA 219차 총회에서 톰슨상(E T Tomson Award)을 받았는데 이 상은 PCUSA 교단 잡지인 ‘프레스비테리언 아웃룩’(Presbyterian Outlook)이 1986년 제정, 교회와 사회를 위해 공헌한 교회 지도자들에게 매년 시상하고 있다.
톰슨 목사는 남북전쟁 이래 123년간 갈라져 있던 미국의 남북 장로교회를 통합시키는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목사는 이민 반세기 동안 선교, 화해, 연합을 실천한 공로가 인정받아 이 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에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컬럼비아신학교에 초빙되어 한미목회연구소 임시 소장을 맡아 일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이승만 목사는 임종전 유족에게 “맡겨진 일을 다 감당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손수락 기자>
동양인 최초로 미국장로교회(PCUSA) 총회장을 지낸 이승만 목사가 1월 14일 별세했다. <사진 이승만 목사 홈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