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벽 산책

2015-01-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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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자 / 시인

어느새 새해가 왔다는 말에는 세월에 삭여진 신맛이 난다. 그런데도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시간의 한계에 구속되어, 다시 새해 달력을 걸어 놓는다.

쫓기듯 여유없이 생활해오느라 머리 위로 무한히 존재하는 푸른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내 주위의 좁은 반경 안에서 종종대며 지내 왔었다. 깊은 숨을 들이 마시며 삶을 음미하고 관조하는 느린 생활을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은퇴한 후 잉여인간이 되지 않으려고 새로운 것에 참여해 봤다. 생의 다른 면을 시도해보는 것이 즐겁고 보람되게 느껴졌다. 거기에 열중하느라 지난 것을 잊고 지냈다. 지난 60 여년 함께 했던 문학을 <노마드에 부는 바람> 책 속에 잠재운 채, 그림 속에 빠져들었다. 이젤 앞에 앉아서 팔레트에 물감을 섞어 캔버스에 투사하는 붓을 든 생활을 시작했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한다. 가속으로 달려가면 잔잔한 생의 아름다움을 놓치게 된다. 천천히 여유롭게 음미하는 생도 결국에는 목표지점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셸 실버스타인의 동화 <잃어버린 조각>에는 귀퉁이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가 온전치 못한 동그라미가 있었다. 동그라미는 너무 슬퍼서 잃어버린 조각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났다.

때로는 눈에 묻히고 때로는 비를 맞고 햇볕에 그을리며 이리저리 헤맸다. 그런데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빨리 구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힘겹게, 천천히 구르다가 멈춰 서서 벌레와 대화도 나누고, 길가에 핀 꽃 냄새도 맡았다. 오랜 여행 끝에 드디어 몸에 꼭 맞는 조각을 만났다. 이제 완벽한 동그라미가 되어 이전보다 몇 배 더 빠르고 쉽게 구를 수 있었다. 그런데 때굴때굴 정신없이 구르다 보니 벌레와 얘기하기 위해 멈출 수가 없었다.

노래를 부르려고 했지만 너무 빨리 구르다 보니 숨이 차서 부를 수가 없었다. 동그라미는 구르기를 멈추고, 찾았던 조각을 살짝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몸으로 천천히 굴러가며 노래했다.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기에 부족한 면을 채우려 헤매지만, 불완전한대로 노래하는 동그라미같이 불완전한 점이 더 인간답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인간이었다. 그 말은 싸우며 자란 것을 의미한다”고 괴테는 말했다. 노마드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 때 ‘유리천장’이란 말이 회자되었었다. 유리천장을 뚫으려고, 완벽한 동구라미가 되어 굴러가려하지만, 역시 우리에겐 자연과 호흡하는, 완벽하지 못한 여유로움이 있어야 숨을 쉬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 같다.

어느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70세가 넘으면 재산도 학벌도 지위도, 지식도 다 평준화가 된다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보고 느끼고 깨닫는 과정에서 인간은 삶의 지혜를 공유하게 된다는 뜻이다.

오랜만에 산길을 걷는다. 지난 수억 년을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은 오래된 친구처럼 그대로 있다. 자연과 동화되는 삶,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동그라미로 굴러가며 노래하는 생활, 부족하지만 인간다운 참삶을 다시 찾으려 한다. 새로운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던 원초적 그리움,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호흡하는 삶을 꿈꾸며 이제 집으로 내려가야겠다. 새해의 밝은 해가 많이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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