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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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목사의 카드

2014-12-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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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종준 / 변호사

12월이면 어김없이 받는 한 장의 카드가 있다. 벌써 20년째,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감사하다며 보내주시는 어느 노(老)목사의 카드이다. 그러나 이번에 받은 노목사의 카드는 왠지 내 마음을 뜨겁게 하고 나를 흔들고있다. 이미 나이가 70이 넘으신 노목사의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70살을 살아보니 내 생애에서 저를 괴롭혔던 사람들보다 도와 준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을 기억하며 늘 고마워하며 살겠습니다”라고…

그 짧은 문구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 듯한 느낌. 그렇다.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했던 사람들보다는 나를 도와준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감사를 기억하기보다는 힘듦을 먼저 기억하는 것은 무슨 일일까?


나는 노목사에게 크게 해 드린 일이 없다. 약 20여년 전에 선교사로 세계를 돌아다니시다가 내가 미국 정착을 위한 신분문제를 해결해드린 것뿐인데 아직도 감사를 느끼고 계신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감사를 느끼기 보다는 돈을 주고 했으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설사 감사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 두 번 카드 보내는 것이 고작일 터인데 이 분은 20년째 변함없이 12월이 되면 내게 카드를 보내는 것이다.

노목사의 카드를 받으면서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도 한때 미국에 계시는 세분에게 약 20여년동안 한결 같이 카드를 보낸 적이 있었다. 한분은 LA에 사는 삼촌인데 처음 유학 온 나에게 큰 도움을 주셨고, 또 한분은 네브라스카 대학의 정 교수님이고, 마지막 한분은 가톨릭 재단의 산타클라라 로스쿨에 입학할 때 추천을 해 주셨던 홀부르크 신부님이었다.

20년을 보내던 카드는 일 년의 안부를 묻고 감사함을 알려주는 도구로도 사용되어 왔었다. 그러던 어느날 홀부르크 신부님에게서 카드 답장이 왔는데, 다른 신부님이 대신 쓴것으로써 홀부르크 신부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이었다. 또한 정교수님도 은퇴를 하셔서 학교로 감사의 카드를 못 보내면서 가까운 LA 삼촌에게도 카드를 보내지 않게 되었다. 정 교수님의 집주소를 알아서 보낼 수도 있었고 또한 삼촌에게도 계속 다시 보낼 수도 있었는데 어느날 부터인가 20년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바쁘다는 핑계가 앞서면서 감사의 열정도 식은 것일까. 어느 노목사의 변함없는 꾸준한 감사의 카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바쁘고 기계화된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감사에 너무 익숙하지 않는 까닭에 인간미마저 메말라 가고 있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감사는 커녕 원망하는 사람들, 감사를 아예 잊고 사는 사람들, 감사는 하긴 하되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요가 없어지면 감사도 없다. 대가가 없으면 감사도 없다. 감사 불감증이나, 일시적이고 대가성 감사가 우리의 인간관계를 오염시키고 있다.

자신만 생각하면서 감사를 잊은 삶은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


감사는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비록 힘든 세상이지만 불행 속에서도 감사의 조건을 찾는 사람들, 없는 것 보다는 받은 것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사람들, 아직 받지도 않았는데도 미리 감사하는 사람들이 있어 희망이 있다. 진정한 감사는 자기 과시용도 아니요 또한 사람을 차별적으로 선택하면서 하지도 않는다. 감사는 남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받은 은혜에 그저 감사하는 마음이다. 나의 필요보다는 남의 필요에 기준을 두고 만족을 느끼면서 하는 감사가 우리의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한다. 남을 생각하면서 하는 감사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어느 노목사의 20년 넘은 카드속에서 감사의 영원성을 본다. 축복받은 사람이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감사하는 사람이 축복받은 사람이다. 따라서 축복받은 사람에게는 감사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감사를 깨우쳐준 노목사에게 감사를 전한다. 이제, 올해의 마감과 새해의 시작을 감사로 채울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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