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3일의 약속

2014-12-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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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의 약속’(The Three Day Promise)이란 책으로 널리 알려진 정동규 박사가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년 초, 롱비치 병원에서 팔순 연세에도 심장 전문의로 활기차게 일하시던 모습을 뵈었기로 너무 놀랐다. 병원으로 연락하니 그의 갑작스런 별세를 확인해주며 애석해했다.

‘3일의 약속’은 그가 18세 때, 공산군을 피해 급히 고향을 떠나면서 사흘 만에 꼭 돌아오겠다고 어머니와 한 약속이다. 그러나 끝내 돌아가지 못한 아들의 통한을 이 자서전에 담았다. 이 책은 십수년 전 영문으로 번역돼 미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었다. 특히 나 같은 이산가족들에겐 뼈아픈 역사적 증언이자 생이별의 아픔을 위로해준 가형의 육필친서 같기도 했다.

내가 처음 그를 만난 건 1995년 여름 백악관 정원에서였다. 당시 잊혀진 전쟁 6.25를 재조명하고, 참전기념비를 링컨기념관 옆에 세우는 캠페인이 미의회의 후원으로 전개됐다. 절친했던 북가주 캘리포니아대학 사회학과 고(故)송영인 교수의 권유로 건립사업에 동참했었다. 한국과 미국의 학계와 정계, 그리고 경제계에 연관이 많았던 송교수 부부의 초인적인 노력으로 1년여의 각고 끝에 100만달러 모금이 달성되었다. 그리고 송교수 부부와 함께 헌정식에 초청받은 것이었다.


당시 정박사님은 자서전 판매전액인 45만달러를 따로 기증하신 터였다. 최대 개인기부자로 백악관 기념전야제에 주빈으로 오셨는데, 사업위원장 스틸웰 퇴역 4성장군과 나란히 서계신 그에게 그의 책 ‘3일의 약속’을 들고 다가갔었다.

나는 400쪽이 넘는 그의 책을 단숨에 읽고, 깊은 감동과 흥분 속에 며칠 잠을 설친 사정을 말씀드렸다. 애끓는 사모(思母)의 정과 전쟁통에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자취들을 생생하고 박진감 있게 써내려간 글에서 우리 어머니 같은 생이별 희생자들의 한많은 삶을 낱낱이 대변해 주신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렸다.

그때 그의 눈가에 가득했던 동병상련의 미소를 잊지 못한다. 더구나 같은 이민자로서 그의 입지전적 생애는 우리 한인교포들에게 큰 귀감이었다. 전쟁통에 중등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29세에 도미하셨음에도, 타고난 재능과 불굴의 투지로 미 전문의의 꿈을 이루고 유려한 영문으로 자서전출판까지 하신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건 책 판매의 돌파구를 만든 그의 지혜였다. 탈고 후 아무 출판사도 받아주지 않자 미 전국 1200개 신문에 9,500만 독자를 가진 ‘디어 에비’ 칼럼리스트 반 뷰란씨에게 간곡한 편지를 쓴 것이다.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반 뷰란씨는 그를 적극 후원, 하루 수만통의 편지와 책 주문이 쇄도했다. 그리고 판매 전액을 한국전 기념비 건립에 기부한 것이다.

뜻밖에도 그와의 좋은 인연은 내게 다시 찾아왔다. 수년 전, 롱비치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은 어머니의 주치의로 선정 받은 분이 정박사님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병상을 찾을 때마다 두고 온 고향산천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고 하셨다. 2년쯤 전엔 그가 보내신 자료로 이곳 북가주 한국일보에 육이오 특집을 전면에 실었다.

분단한국의 산 증인이자 이민자들의 귀감이셨던 정박사 같은 어른들이 한분씩 우리 곁을 떠나가신다. 안타까운 일은 이들의 자취를 기리는 후손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목숨을 걸고 공산치하를 탈출한 이산가족들과 공산군과 맞싸운 용사들의 뼈와 살을 먹고 세워졌다. 민주주의를 말살하려했던 용공집단들이 감히 민주주의를 제 것인 양 떠들며 적반하장하는 세태가 과연 세월 탓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정박사님은 이 땅에서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지만 하늘나라에서 상봉하셨을 것이다. 땅에서 맨 약속이 하늘에서 풀린 셈이다.

김희봉 (수필가, 환경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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