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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네티컷/ 칼럼: 조고각하(照顧脚下)

2014-12-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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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선<전 한인회 회장>

한해의 끝자락은 늘 아쉽다. 열심히 살았는데도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느낌, 실체를 알 수 없는 막연함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또 한해를 이렇게 보내는구나 하는 아쉬움이 가슴에 남는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영원의 망각으로 가버린 그 이름 없는, 평범하거나 볼품없는 일상이라 이름 붙여진, 그 하루하루가 모여서 이 계절 앞에 다다랐음을 안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 오늘과 크게 어긋나지 않을 내일, 그 속에서 내 삶의 궤적을 찾아야 하겠지만 삶은 그렇게 모자라거나 특별하지도 않게, 얼마만큼의 희망과 적당한 절망과 그만큼의 타협으로 오고 갔었다. 그 망각의 저편으로 가버린 일상이 그리운 것은 자연의 순환 앞에 속수무책으로 마주한 자신을 본 까닭이리라.

올 한해는 다사다난(多事多難)하다는 말로는 모두 설명이 안될 만큼 크고 작은 일들이 이 사회를 뒤흔든 혼돈의 해였다. 멀리 떠나 살아도 고국의 소식은 날마다 마주하는 뉴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지니 무관심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커네티컷의 이 작은 한인 공동체에도 그냥 흘러 보내기 어려운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간 한해였다.


국민 모두의 가슴에 슬픔으로 각인된 세월호 문제는 해법을? 풀지 못한 채 해를 넘길 예정이고, 전직 국회의장의 추문을 비롯해 지식인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일탈을 넘어선 모습은 뉴스를 통해 보기에는 부끄러운 사건들이었다. 특히 올해의 화두처럼 회자된 ‘갑’질’이라는 말은 짧은 시간에 눈부시게 성장한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듯해 씁쓸하기까지 했다.

최근 들어서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라는 말이 무색하게 재벌 가족의 횡포와 부끄러운 ‘갑 질’이 ‘땅콩 회항’ 이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되었다 한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사회적 지위가 높은 계층이 스스로 그 특권을 박탈함으로써, 계층 간의 차이를 극복시킨다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 하지 않더라도,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를 논하기조차 부끄러운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 듯하여, 나와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뉴스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정치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나 그들의 각자 정치 성향을 떠나서도 헌법 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각들은 사람들이 모이는 모든 공간에서 격론을 벌이게 하니 새해에도 계속 듣게 될 소식이겠다.

지난주에 우연히 수도원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모두가 자신에게 이롭게 편을 가르고 욕심껏 움켜쥐는 현대에 ‘기도하고 일하라’는 수도원의 설립 취지대로 쉼 없이 일 하며 기도하는 분들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한편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작은 위안 이 되었다. 수도원에서 만난 수도자와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서 세상에서 한 발짝 떠나 있는 모습을 보았다.

추운 겨울 날씨에 방풍도 제대로 안된 휑한 주방 한 구석에 차려진 음식은 수도자들이 직접 일군 채소들이 전부였으나, 오히려 그 단출한 소박함이 세상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행복을 느끼게 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작은 손가방과 다 해진 한 벌의 양복이 전부인 수도자를 보며 늘 모자람을 채우려 했던 내 삶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대림 (Aventus) 은 라틴말로 도착을 의미한다. 깨어 기다리는 대림은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참회하고 기다리는 시간이다. 굳이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한해의 끝자락에 성탄을 기념하며 지내게 함은 요즘 같은 세상에 큰 의미로 다가왔다.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이 있다. 신발을 신고 벗을 때는 제대로 벗고 제대로 찾아 신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신발을 되돌아보듯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이다. 한해를 마감하고 또 새해를 준비하는 지금, 나를 살피고 바로 바라보는 일을 가장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을 배려하는 아름다운 실천으로 서로를 ‘갑’으로 만드는 세상을 꿈꾼다. 어떤 신학자가 말했듯이 ‘인간을 ‘갑’으로 올리기 위하여 스스로 ‘을’이 되신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 을 함께 축하하며…. 그동안 귀한 지면을 내어주신 한국일보와 아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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