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법원행정처장 전격 퇴진 ‘사법 3법’ 반발 고조

2026-02-28 (토) 12:00:00 김혜영·김현우 기자
크게 작게

▶ 박영재 “사법제도 개편,국민 이익 돼야”

▶ 사퇴 이유로 ‘여당 사법개혁 추진’ 콕집어
▶ 정청래 “사표 낼 사람은 조희대” 강공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박영재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27일 처장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지난달 13일 천대엽 전 처장 후임으로 임명된 지 45일 만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사법개혁 3법' 입법 강행에 대한 반발로 여당과 사법부 갈등은 이제 공개 충돌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대법원에 따르면 박 처장은 이날 오전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조 대법원장이 받아들이면 박 처장은 역대 가장 짧은 임기를 보낸 법원행정처장이 된다. 박 처장은 입장문에서 "최근 여러 상황과 법원 안팎의 논의를 종합할 때 제가 물러나는 것이 국민과 사법부를 위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어려운 시기에 물러나게 돼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사법제도 개편 논의가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사퇴 이유로 여당의 사법개혁 추진을 콕 집어 언급한 것이다.

박 처장의 결정은 국회의 사법개혁 법안 처리와 맞물렸다. 국회는 26일 민주당 주도로 법 왜곡죄(형법 개정안)를 통과시켰다. 판사·검사가 특정인에게 불이익을 줄 목적으로 법률을 잘못 적용하거나 증거를 조작하면 10년 이하 징역에 처하는 내용이다. 처리 직전 일부 조항을 손봤지만 사법부는 여전히 위헌 소지와 남용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날 통과된 재판소원제(헌법재판소법 개정안)는 대법원이 사실상 4심제라면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 온 사안이다. 28일 처리가 예상되는 대법관 증원(법원조직법 개정안) 역시 대법원은 "사실심 약화"를 이유로 보다 신중한 '단계적 추진'을 주장해 왔다.

전국법원장회의는 25일 긴급 임시회의 뒤 "사법제도에 근본 변화를 가져와 국민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안들이 사법부와 사회 각계의 우려 표명에도 충분한 공론화와 부작용에 대한 숙의 없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데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했다. 법원장들은 "여러 기관·전문가를 아우르는 협의체를 통해 폭넓고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도 했다.

박 처장의 조기 사퇴는 적지 않은 파장을 낳을 전망이다. 박 처장은 취임 직후부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의원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특히 지난해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상고심에서 전원합의체 회부 전, 주심을 맡았다는 점을 여당은 문제 삼았다. 또한 조 대법원장이 그를 '사법부의 대외 소통 창구이자 행정 책임자'로 임명한 배경도 지적하면서 사과 요구와 사퇴 압박을 이어갔다.

법원행정처장 사퇴의 전례가 없지는 않다. 앞서 2009년 김용담 전 처장은 "재판 업무 복귀"를 이유로 사퇴했다. 당시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사태 논란에 대한 책임 차원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2019년 안철상 전 처장은 장기간 업무 부담을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고, 일각에서는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과의 갈등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다만 이들의 사퇴 배경이 공히 법원 내부 사유였다는 점에서 이번 박 처장과는 결이 다르다. 사퇴 이유로 "사법제도 개편"을 직접 언급한 데다, 사법개혁 입법을 둘러싼 제도 충돌이 현재 진행형인 만큼 파장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김혜영·김현우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