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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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들뜬 송년… 나만 왜?”

2014-12-2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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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기획/ 중년 가장들 ‘연말 우울증’

▶ 불경기·경제적 무력감, 혼자서 고통 감내 자칫 가정불화로 비화

뉴저지의 한인 수입도매 업체에서 10여년간 근속하며 능력있는 직원으로 인정받던 박모(49)씨는 몇 달 전 경영난을 겪던 회사가 끝내 도산하면서 실직자 신세가 됐다. 연말 시즌이 무르익으면서 주변에서는 분위기가 들뜨고 있지만 박씨는 오히려 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박씨는 “이민 온지 얼마 안돼 얻은 첫 직장에서 그동안 성실히 일하며 아메리카 드림을 키워왔는데 갑자기 실직자가 되니 허탈하다. 애들도 아직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고 있어 한참 더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데 나란 존재가 참 초라하게 느껴진다”며 넋두리를 했다.

최근 뉴욕과 뉴저지 곳곳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송년 분위기와는 달리 연말을 맞아 더욱 심각해지는 우울증을 호소하는 한인들이 늘고 있다. 특히 불안증과 우울증 증상을 보이는 중년 한인 남성들은 ‘책임감’이란 무게에 짓눌리는 ‘가장 증후군’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꿈에 그리던 영주권을 취득한 최모(37)씨는 스스로를 향해 직장인 사춘기라고 자조한다. 최씨는 “영주권이 취득하고 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현실은 여전히 군소 회사들만 전전하고 있다. 1~1.5세 한인들은 미국에서 이직 가능 분야가 한정돼 있어 미래를 생각할수록 우울해진다”고 토로했다.

한인 가정상담 기관 등에 따르면 취업과 신분문제, 30~40대 가장의 책임감은 무엇보다 ‘자존감’과 직결된다. 자신이 바라던 모습으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자존감이 약해지고 우울증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레지나 김 가정문제연구소장은 “한인 남성들은 고민거리가 생겨도 ‘꾹꾹’ 참은 채 혼자 모든 것을 떠안고 가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특히 스트레스 관리를 못하면 강박관념이 항상 따라다닌다. 불안증이 심해지면 우울증으로 이어지곤 한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남성 우울증이 심해질 경우 화를 밖으로 유발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사회생활에 따른 강박 관념과 우울증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자해나 가정폭력 등 심각한 상황을 맞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걱정거리로 인한 강박관념이나 우울증이 지속될 경우 홀로 시간을 보내려는 모습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전문가들은 “진로나 미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같은 고민은 특별한 정답이 없기 때문에 우울증이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운동 등으로 신체에 자극을 주고 동호회 등 자신과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을 만나 지지그룹을 만드는 것이 좋다. 특히 고민거리를 가족이나 친구에게 털어놓는 자세도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천지훈·김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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