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려 지국장>
며칠 전 우체통에는 몇 개의 광고 카탈로그와 함께 크리스마스카드가 한 장 들어 있었다. 발신인이 없이, 메이라 루이즈라는 이름과 PO Box 주소가 수신인 자리에 적힌 카드에는 우표도 붙여져 있지 않았다. 누구 일까. 아마도 우체부인가? 우체부의 감사카드는 받아봤으나 이런 일은 처음이다.
봉해져 있지도 않은 빨간 색 봉투에서 꺼낸 반짝반짝 은박으로 눈 덮인 광경의 카드를 보자 갑자기 ‘크리스마스카드 노스탈쟈’가 밀려 왔다. 추운 겨울 날 벙어리장갑을 끼고 동네 문방구에서 크리스마스카드를 고르던 어린 시절까지 돌아가지 않더라도 바로 몇 년 전 당연하게 수많은 크리스마스를 주고받던 시절 말이다.
11월 말이면 벌써 성급한 크리스마스가 오기 시작해서, 12월로 들어서면 매일 우체통에서 의례히 몇 장의 크리스마스카드를 꺼내곤 했다. 나도 카드를 써야지… 더구나 한국으로 보내는 카드는 빨리 써야 할 텐데 하면서 우선은 초조감으로 시달린다. 미리 준비를 하지 못하는 게으름을 탓해보지만, 사실 조용히 앉아서 친지들의 얼굴을 떠 올리며 정성스레 카드를 쓰기가 어려울 지경으로 바쁘던 시절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카드나 사서 ‘OO님 가정에 성탄을 축하하며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라는 판에 박힌 글을 쓰기는 싫었다.
나를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카드를 고르고 받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 사람에게 가장 잘 맞는 말을 찾아 쓰느라, 결국 몇 날 밤을 잠을 못 자곤 했던 시절 말이다. 한국으로 보내는 카드는 웬만한 길이의 편지까지 겸하며 그렇게 카드 쓰는 시간을 좋아 했었다.
한 뭉치의 화려한 카드를 벽난로 위에 길게 쭉 세워 놓으면 집안 크리스마스 장식에 한 몫을 해 냈다. 십 수 년을 그렇게 해 온 정겨운 크리스마스 장면이 서서히 바뀌어 갔다. 언제 부터인가 가족사진을 보내오는 젊은 가정이 늘어나고 이메일로 e카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물론 우체통으로 오는 카드는 줄기 시작했고 이제는 e 카드도 드물다.
이메일이다 카톡이다 매일 소식을 주고받는 사람들끼리 새삼스럽게 성탄절을 맞이하여 복 받으시라는 카드를 보내는 것도 어색해진 탓일까. 어린 자녀를 둔 가정에서 보내오는 사진 카드 말고는 이제 카드는 거의 끊어 졌다. 나 역시도 ‘형식적인 것은 이제 그만두자.’ 하고 카드를 보내지 않은 지가 몇 년이 되었다.
올해 우리 집 우체통으로 들어온 카드는 발신인이 없는 미스터리한 카드를 빼면 매년 ‘아이들이 이제 이렇게 컸구나’를 보여주는 멀리 사는 조카가 보내 온 카드, 올해 태어난 예쁜 아기 사진이 든 카드 그리고 한 교인이 보내 온 너무나 반가운 ‘형식적’ 카드 한 장이 전부다.
초록색과 빨간색 일색의 반짝이는 크리스마스카드 역시, 그 옛날 우리 생활에 북박이로 존재하던 공중전화처럼 역사 속으로 흘러가는 가 보다. 그러나 다사다난하게 한 해를 보내면서 최신 테크닉으로 서로의 행복을 빌며 주고받는 마음만은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