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일어난 땅콩회항 사건 얘기를 들으면서 별 생각이 다 든다. 이 사건은 미국 주류사회 언론에도 제법 보도가 되었다. 나는 평소에 한인들 외에도 만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한인들 외에 아직 아무도 나에게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이 없다. 분명히 알고 있을텐데 나에게 말이 없는 것은 관심을 별로 끌지 못해선지, 너무 어처구니없는 사건이기에 거론할 가치를 못 느끼는 건지, 아니면 내가 한인이기에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하는 건지 가늠할 수가 없다.
어쨌든 이 사건은 미국에 사는 한인동포들 모두를 크게 수치스럽게 했다. 세계적 대기업의 오너 가족 구성원이자 회사의 고급 임원이라는 사람이 그러한 전근대적 사고를 가질 수 있다는 것과, 상사의 불법, 부당한 회항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는 문화가 아직도 그러한 기업에까지 존재한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 한국의 국토부와 검찰 조사 경과를 지켜보겠다.
그런데 국토부 조사의 경우, 조사관들 가운데 상당수가 해당 항공사 출신들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선 조사관들이 조사를 아무리 잘 해 보았자 본전도 못 건질 가능성이 크다. 국민들의 눈에는 국토부 조사관들이 해당 항공사와 한 통속으로 보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는지 국토부는 해당 부사장을 검찰에 고발하고 항공사에는 운항정지나 과징금 부과 등의 행정 처분을 내릴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이럴 때는 해당 항공사 출신들은 조사에서 손을 떼거나 아예 국토부 외의 다른 정부기관이 조사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조사관들이 국민들로부터 불필요한 의심을 받을 여지도 없었을 것이고, 해당 항공사 측에게도 국토부의 조치가 국민들의 시선을 의식한 과잉 반응 때문이라는 주장을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조사에는 언제나 공정성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공정성에 있어 객관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결과가 아무리 공정하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객관적인 절차에 따른 것이었다는 인정을 대중으로부터 받지 못할 경우 어떤 결과를 내놓는다 하더라도 결과의 공정성에 훼손이 갈 수 밖에 없다. 검찰이나 경찰 조사에서 피의자와 친분이 있는 검사나 경찰관이 조사과정에서 제외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비슷한 시점에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 교수가 연루된 중국음식점 식대 논란 이메일 논쟁 사건이 터졌다. 해당 교수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고, 결국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도 우리로 하여금 강자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의 한계에 큰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누구의 잘잘못이냐를 따지기 이전에 세계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는 학교에서 박사학위에 로스쿨까지 마친 변호사 겸 대학교수인 엘리트 사회지도층 인사가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사회적 약자로 여겨지는 소규모 중국음식점 주인에게 보인 대응방식은 치졸해 보였다. 상대가 누구이든지간에, 그리고 직접 얼굴을 맞대든 아니면 사이버 공간을 통해서든지 상관없이, 우리 모두에게는 이웃에게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예절이 있다. 물론 그의 사회적 지위가 달랐다면 이렇게까지 언론에 오르고 대중으로부터 지탄을 받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지도층으로 존중을 받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엄격한 잣대의 심판이 요구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은 대학교수처럼 학식이나 명예의 우월함을 누리는 자리에 있거나 대기업의 오너처럼 부(富)의 힘을 누리는 사람에게나 마찬가지다.
이런 와중에서도 나는 어떤 한 그룹의 학생들을 위해 땅콩회항 사건 해당 항공사의 비행기 표를 여러 장 예약했다. 현재 워싱턴에서 한국까지 직항으로 가려면 오직 그 항공사를 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직항의 편리 때문에 비용이 더 들더라도 이 항공사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많다. 나는 이 직항을 이용할 때마다 독점적 위치에 있는 이 항공사에게 경쟁자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소동을 일으킨 그 오너 가족 부사장도 문제지만 그 문제를 수습하는 해당 항공사 경영진의 대응방식과 그 과정에서 드러난 기업문화를 지켜보면서 더욱 더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예약은 했지만 아직 표를 매입하진 않았기에 다른 항공사 이용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