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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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기획-세밑 더 외로운 탈북동포들<하>탈북 여사원의 미국 정착기

2014-12-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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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해본 것 없어요” 7년만에 아메리칸 드림

▶ 2007년 중국.태국 거쳐 뉴욕 정착

신세계를 꿈꾸며 미국행을 택한 탈북 동포들의 대다수는 미국 정착과정에서 온갖 난관을 겪고 있지만 남다른 노력으로 자리를 잡은 경우도 있다. 망명 이후 고학 생활까지 해가며 아메리카 드림에 도전 해온 뉴저지의 회사원 김소연(사진·30·가명)씨가 그렇다.

지난 16일 뉴저지 팰리세이즈팍의 한 커피샵에서 만난 김씨는 억양을 제외하곤 여느 한인 회사원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함경북도 해령이 고향인 김씨의 미국 정착기는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탈북자 6명이 미국에 망명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미국 망명을 결심한 김씨는 2007년 중국과 태국을 거쳐 가까스로 업스테이트 뉴욕의 시라큐스에 도착한 후 지난 7년 동안 앞만 보며 악착같이 살아왔다.

아버지가 탈북 과정에서 사망해 여동생과 어머니를 모시는 실질적 가장 역할까지 맡아야 했던 김씨는 그동안 식당 웨이트리스와 네일샵 등을 전전해야 했다. 연방정부가 초기 생활 정착을 위해 6개월간 푸드 스탬프와 의료보험 등을 지원했지만 세 식구가 먹고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3개월 만에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한국보다는 차별도 없고 기회가 많은 미국에 오고 싶었습니다. 열심히 일도 하고 공부도 해서 성공한 탈북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어요. 지금은 정착하느라 그 꿈들이 모두 사라져버렸지만요”

김 씨가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일이었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탈북자들에게 학비나 거처를 지원해주지 않기 때문에 김씨 스스로 모든 난관을 헤쳐 나가야만 했다.

미국 정착 10개월 만에 커뮤니티칼리지에 진학한 김씨는 매일 아침부터 오후 3시까지 수업을 듣고 오후 4시30분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식당에서 일을 하는 강행군을 지속해야 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어 일하는 틈틈이 식당 문밖에서 밥을 먹을 때면 주인으로부터 ‘거지냐’는 핀잔을 들으며 남모르게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갖은 고생 끝에 4년 전 뉴저지의 한인 회사에 취직했지만 고통은 계속됐다. 자신이 탈북자라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탈북자라고 하면 인정안하는 부분이 있어요. 탈북자 신분을 밝혔으면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 올 수 있었을 까란 생각이 들기도 해요”

김씨는 한인사회가 미주지역에 정착한 젊은 탈북 동포들에게 조금만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길 당부했다. 김씨는 “한국에 탈북했다가 지원을 받고 미국으로 유학하는 경우가 많아요. 미국의 한인 단체가 한국 탈북자들의 미국 유학을 돕는 경우도 많죠.

하지만 정작 미국에 있는 탈북자에게는 도움이 없어요”라며 “저처럼 고생하고 있는 젊은 탈북자들에게 좋은 후원자가 나타나 그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길 바랍니다”고 말했다.<조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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