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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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의 초대/ 아티스트 천세련

2014-12-1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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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은한 차 향, 예술이 되고 인생이 되고...

▶ 독특한 예술세계 주목 “개념 아티스트로 남고 싶어”

찻물이 스며든 작품은 웬지 차향이 날 것 같다. 작가이자 갤러리 대표, 한국학교 교사, 차문화 전도자, 어느 것 하나 소홀하지 않는 천세련 아티스트를 만나 듣는 차사랑 이야기다.

▲먼저 즐긴 것을 나눈다
“마시고 비우고 차향을 맡으면서 평정심을 갖는다. 이는 차의 덕이다.”는 천세련, 둥근 찻잔 안에 담긴 차를 마시고 우려낸 찻잎을 종이에 붓고 담그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 찻물이 종이에 배어든다. 그 위에 다시 색을 칠하고 겹치기, 흘리기를 거듭하다보면 은은하고 평화로운 꽃, 나무, 햇살, 바람, 산과 강 등이 탄생한다. 이렇게 그의 믹스미디어 작품 소재는 찻물, 한지, 가죽, 모래, 흙, 돌 나뭇잎 등 자연친화적이다.

보통 떫은 차가 아닌 한 잔의 달콤한 차를 우려내자면 물의 양, 찻잎 비율, 온도 등 온갖 정성과 시간이 들어야 한다. 그렇게 우린 차를 마시면 정신이 맑아진다.
그래선지 찻물이 물든 그의 작품을 보는 관객들은 저마다 편안하다고 말한다.
천세련은 작가이면서 2005년 뉴저지 지역 최초의 한인갤러리인 옴즈(Oms)를 오픈, 백남준 전시회를 비롯, 20명 이상의 한인작가 기획전 등 100회 이상 전시기획 큐레이팅을 했다. 전시회 품앗이로 차 시연회도 수없이 가졌다.


▲저절로 습득한 다도
“1,500년의 역사를 지닌 차, 나 혼자 즐기기보다 먼저 즐긴 것을 나눈다는데 의미가 있다. 고려청자, 도자기가 세계적인 한국 문화유산이듯 한국 전통차가 미국에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래서 뉴욕·뉴저지 공립학교, 주미한국대사관 워싱턴 한국문화원은 물론 뉴욕대, 예일대, 보스턴 대학에서 다도(茶道)회를 열었다. 그가 다도를 접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다. 교육자인 부모님 슬하에서 성장하며 어린 시절부터 집에서 차를 마셔왔기에 저절로 습득된 것이다.

“한국학교 교사로서 한국 문화에 대해 가르치면서 차 공부를 본격적으로 했다. 경희대 사이버대학에서 차의 미학에 대해 8년간 공부했고 지금도 차사랑회 이근수 교수로부터 조언을 얻고 있다.”

천세련은 퀸즈한인천주교회 힌국학교에서 14주 코스 정규과목이 된 ‘차사랑’반을 지도한다.갤러리를 하다보면 ‘사람 소화불량’에 걸리는 적도 있지만 아침저녁에 혼자 마시는 차는 힐링 효과를 준다고. ‘어떤 것이든 고통 없이 주어지지 않는다’, ‘실수 없이 되는 것은 없다’는 그는 어느새 화가 다스려진다고 한다.

▲한인사회 문화공간 마련
천세련은 지난 가을 제주도 새심재 갤러리 개인전을 비롯 그동안 14회의 개인전과 샌프란시스코 아트 페어, 마이애미 아트 페어 등에 참가했다. 10년 전 뱅크아시아나 공공전시실 관장을 2년간 하며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문을 활짝 열었고 현재 BBCN 은행 전시 큐레이터로써 예술이 있는 생활공간을 만들고 있다.

“예술가와 커뮤니티가 서로 협력단체가 되어야 한다. 마케팅에 예술작품이 있으면 최고의 업그레이드가 된다는 것을 인식, 이민사회 의식이 높아졌음이 기쁘다”고 말한다.

1999년부터 7년간 FGS KCC 커뮤니티 부회장으로서 갤러리를 운영하며 색동문화교실을 열었고 뉴저지 올드타판에 찻집 그린하우스 운영, 25년간 뉴욕한국학교 예술·문화 교사를 지냈다. 내년에는 30년 한국학교 근속표창을 받는다.
현재 티넥 소재 옴즈 갤러리는 지난 11월 독일 펠트 설치작가 울리케 라우텐스트지라우흐 초대전을 열었다. 천세련은 한인작가 및 타인종 작가들 전시를 기획한 공으로 2000년에는 알재단 커뮤니티상을 받기도 했다.
“신진작가들, 제자들이 잘 되는 것이 보람 있다. 수평관계로, 이 시대를 같이 가는 동반자로써 그들을 가르치고 그러는 가운데 나도 배운다.”


▲예술가 집안에서 성장
“천씨 종친회 회장이셨던 아버지 천덕기, 도예가 천한봉, 시인 천상병, 화가 천경자 등 그분들의 혼맥이 내게 큰 힘이 된다. 씻을 세, 연꽃 연, 세련(洗蓮)이란 이름은 진흙 속에 연꽃이 맑고 향기롭게 피듯이 세상에 혼탁해도 그렇게 살라’는 이름이 부모님이 준 제일 큰 선물이다.”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난 천세련은 서울 내자동에서 성장하면서 수송초등학교를 다녔다. 안국동, 삼청동, 4대문안 성을 걸어서 학교를 가고 고궁으로 소풍도 갔다.
79년도 건국대에서 생활미술을 전공하여 회화, 조각, 도예를 배웠고 스승은 이만익, 이명국씨 등이다. 졸업후 신정여상, 여중 미술교사를 지낸 후 81년 의사인 남편을 따라 미국에 왔으며 뉴저지 뉴밀포드 아트센터와 뉴욕대에서 판화 공부를 했다.

두 딸을 낳아 키우면서 올드타판 도서관 보드 멤버가 되어 인터내셔널 멀티 컬처 프로그램으로 차 시연을 했고 버겐커뮤니티 대학에서 매듭 강의를 했다. 또한 독일 친구 울리 이야기로 워싱턴문학회 수필상을 받았으며 그동안 써온 100여편의 에세이가 E-BOOK으로 작가들과 소통 교류하고 있다.

▲우주와 내가 하나
‘시서화에 하나를 더 보태어 다선일체(茶禪-一體), 차를 마시는 것과 선을 수행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 노력한다’는 천세련은 이 모든 것이 혼자 하는 작업이라 고되고 힘들지만 절대고독 속에 태어나는 작품이 빛을 발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요즘 그는 설치작업과 실(인연줄) 작업을 계속 하면서 거울이 소재가 된 원, 네모 등의 설치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스마트폰, 집안 어디나 작은 원, 작은 네모 모양의 거울이 함께 하며 ‘내 마음을 본다’는 작가의 내면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그 가운데 사람이 있다’는 천원지방(천원지방)이다.
그동안 판화 에칭이 주가 된 조선 여인 시리즈, 찻잔 시리즈, 원 시리즈에 이어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는 개념미술이다. 그는 ‘개념 아티스트로 남고 싶다’고 한다.

내년 9월 독일 베를린에서 규방문화를 다룬 15회 개인전을 열 계획인 천세련은 늘 자리에 앉아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다보니 건강을 유지하는 운동으로 요가를 하고 있다. 큰딸 리나는 뉴욕대 심리학과를 나와 회사에 다니면서 옴즈아트 기획 일을 돕고 둘째딸 데나는 보스턴대 비즈니스를 전공한 후 도이치뱅크에서 일한다.

“리나는 20년간 함께 한국학교를 다니면서 엄마의 보조교사를 하더니 올 가을 한달반 베를린에 가있는 동안 대신 아이들을 가르치는 등 엄마를 적극 도와준다. 작은 아이는 25세때 생일선물로 크레딧 카드를 선물해주어 여행 갈 때 잘 쓰고 있다. 한명은 결혼하고 한명은 독립했는데 두딸은 나의 베스트 프렌이다”고 자랑한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완성된 작품을 보며 즐거워하는 천세련, 일회일기(一會一期), 지금 이순간이 가장 소중하단다.

“옴즈기획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시작해 작가들을 도와주고 싶다. 젊은 작가들에게 옴즈 갤러리는 언제나 오픈되어 있다. 10년 후에는 더욱 발전해 있고 싶다. ”
옴즈 갤러리는 내년 5월, 수원시 행궁제 갤러리에서 독일 팰트작가 울리의 전시회를 연다. 장차 차 박물관도 구상 중이다.

찻물을 부어 작품을 만들고 실로 옷감을 짜고 매듭으로 작품을 장식하고 손으로 만드는 기쁨이 충만한 곳, 그의 공간에는 시간과 공을 들인 정성이 가득하다. 2세와 3세들에게 1주일에 한번 매듭, 서예, 그림, 바느질, 다도 등의 교재 연구를 하면서 시작한 이 모든 것이 작품으로 승화되었다. 그래서 천세련의 손길은 향수냄새 나는 손길과 비교가 안되게 값지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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