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관위 번역사로 제2인생 “보람 있고 행복해요 ”
▶ 정확한 의미 찾기위해 늘 공부 “매력적인 직업”
뉴욕시 선거관리위원회는 한인 밀집지역의 투표용지를 영어와 한글로 병기되어 있어 언어가 불편한 한인들에게 편리를 제공하고 있다.
선관위는 또한 한글 웹사이트도 운영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인들은 투표를 정확히 할 수 있고 투표 참여율도 높아지면서 정치력도 점차 신장되고 있다. 이처럼 선관위에서 투표용지, 선거홍보물 등 각종 선거관련 자료를 한글로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선관위에 한인 번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뉴욕시 선관위 로즈 함 한국어 번역사다.
■우연한 기회가 천직으로
로즈함(67)씨는 1947년 경기도 양평에서 4남매의 장녀로 태어났다. 시골서 태어났지만 서울에서 자라 진명여고와 중앙대 약학과를 졸업해 약사로 근무를 했다. 1973년에는 미국 이민 길에 나섰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며 살림도 해야 했기에 약사가 아닌 파타임 부동산 일을 시작했다. 경험을 쌓아 퀸즈 우드해븐에서 부동산회사를 차렸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아 회사를 접고 혼자 상업용 매매를 위해 맨하탄으로 진출했다.
열심히 노력하는 만큼의 성과보다는 힘든 날들이 더 많아지면서 세월만 흘렀다. 그렇게 오랫동안 부동산 일을 하다가 좀 더 편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찾고 있을 때 어느 미국인 변호사가 마음도 편하고 보람도 있는 법정통역관을 권해, 통역사를 마음에 두게 된다. 어느 추운 겨울날 뉴욕주 법정통역관 시험을 치르고, 필기시험 합격 후 구두시험도 통과했다. 그렇게 법정통역관의 자격을 갖추었는데 풀타임 자리가 없었고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2007년7월 법정통역관 합격자를 대상으로 어느 에이전시가 한 통의 메일을 보내왔다. 정부기관에서 6개월 동안 한국통역이 임시로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뉴욕시 선거관리위원회 임시직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2개월 후 매니저의 풀타임 제의를 받고는 임시직이 끝난 2008년부터 현재까지 6년 동안 선관위에서 정식직원으로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그는 “나이가 들어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직업을 찾기 위해 법정통역관 시험을 치렀는데 그 자격증이 법정이 아닌 선관위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게 될 줄은 몰랐다. 그 덕분에 우연한 기회에 선관위 번역사로 일하게 됐고, 지금을 이 자리가 바로 나의 천직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
■늘 배울 수 있다는 게 매력
그가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 뉴욕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하는 일은 뉴욕시에서 실시되는 각종 선거와 관련해 투표용지, 기표소 등에서 볼 수 있는 후보자들의 이름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각종 선거에 쓰이는 홍보물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을 담당하는 것이다. 선거 당일에는 투표장 모니터링을 하며 선거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관리점검 등도 하고 있다.
그는 선관위에서 번역사로 일하면서 늘 공부를 해야 하는 직업이 매력이라고 꼽는다. 그 이유로는 번역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모든 것이 컴퓨터로 이뤄지기 때문에 컴퓨터를 잘 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직업인데다가 또 정치, 사회 등 모든 돌아가는 일들을 알고 있어야 업무지시가 있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선관위서 근무하다 보니 마음에 드는 건 의료, 휴가 등 각종 혜택이 좋고 무엇보다 안정적인 면이라고 말한다.
선관위의 모든 결정은 뉴욕시 5개 보로에서 각각 선임된 민주, 공화 양당의 10명의 위원들이 한다. 때문에 선관위에 근무하려면 미 시민으로 유권자등록을 해야 한다. 민주, 공화의 어느 당에서건 자원봉사 등을 비롯한 많은 활동을 한 경험이 있으면 취업에 큰 도움이 된다고 귀띔한다.
그는 “선거관련 모든 한국어 정보를 번역하고 있다. 보다 정확한 의미를 찾기 위해 사전을 찾아야 하듯 최선을 다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를 위해 늘 공부를 해야 하기에 더욱 마음에 든다”며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하나 둘씩 배울 수 있음이 곧 매력이라 말한다.
■보다 더 적극적인 선거참여를
맨하탄 다운타운에 위치한 선관위 본부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한인들의 선거의식에 관해 예전보다는 향상됐지만 아직은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예전에는 시민권을 소유한 한인들도 투표를 남의 나라 일같이 생각했지만 지금은 한인사회에서 선거 캠페인이 지속되면서 한인들의 선거의식도 점점 향상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전한다.
그는 한인들이 지금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로, 모든 것이 투표로 국민다수가 원하는 데로 움직이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정부에게 한 목소리로 내는 게 중요하며, 바로 그 방법이 투표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우리의 2세들을 위해 그들이 미 주류사회에서 제대로 활동하며 탄탄대로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야말로 한인 1세들의 역할인 만큼 꼭 ‘투표가 힘’이 되도록 한 표의 행사를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권리이자 의무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권했다.
그는 “뉴욕시 선거는 18세 이상 미국시민으로 유권자등록을 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한인들이 밀집한 퀸즈는 연방선거법에 의거 한국어 서비스도 제공되기 때문에 언어에 불편이 있는 한인들은 투표소 입구에서 통역 서비스를 요청하면 어려움 없이 투표할 수 있다. 한인 유권자들이 더 많아지고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해 투표율도 높아져 미 주류사회가 주목하는 한인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우리는 공무원 가족
뉴욕시 선관위에서 공무원 신분의 한국어 번역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두 아들을 두고 있다. 그 중 큰 아들은 육군 중령이며 작은 아들은 연방검사로 가족 모두가 공무원들이다.
큰 아들은 미 육군사관학교(West Point)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원을 거쳐 모교인 육사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다가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를 한 뒤 국방부에서 근무를 했다. 지금은 아들과 딸에게 한국을 보여주기 위해 한국 근무를 자청해 2,500여 명의 미군을 통솔하는 부연대장으로 2년째 근무하고 있다. 그의 아내는 미군 캠퍼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둘째 아들은 현재 연방검사로 뉴저지에서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국제사이버 범죄조직을 소탕하는데 큰 역할을 해서 뉴욕타임스에 사진과 함께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변호사로 일하는 아내와 사이에 최근 첫 딸을 출산한 그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 사회의 나쁜 사람들을 잡아서 많은 선한 사람들이 편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는 “늘 바쁘게 살다보니 아이들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꿋꿋하고 훌륭하게 성장한 것이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70에 가까운 인생을 살면서 내 세울 것이라고는 두 아들뿐”이라며 자식 자랑에 뿌듯해 한다. 그는 또 “더 바람이 있다면 큰 아들이 대한민국이 통일될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고, 작은 아들은 앞으로 더 많은 범죄자들을 잡아서 이 세상을 안전하고 정의롭게 하는데 더욱 기여하기를 바란다”며 자식들을 향한 무한한 기대와 바람을 펴 보인다.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
그는 앞으로 3년 정도 후인 70세에 은퇴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은퇴 후에 직업이 아닌 봉사하는 차원에서 언어가 불편한 한인들을 위해 법정통역관은 물론 번역과 통역 일을 할 예정이다. 나에게 주어진 능력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삶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란다.
불교신자인 그는 그 동안 못한 종교생활도 착실히 하고 운동도 더 열심히 하며 은퇴 후에서 일은 계속하겠다고 한다. 그동안은 직업에 의한 삶이었지만 앞으로는 나와 남을 도와주는 생활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행복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할 때, 무언가 시간과 내가 하나가 됐을 때의 기쁨이라는 그는 ‘인생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표대로 조심히 잘 운영해야 한다. 인생에 실패는 할 수 있어도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선관위 번역사는 “한 마디로 영어가 불편한 한인 유권자에게 모든 선거정보를 쉽고 정확하게 알려주는 사람이자 한국 유권자들이 편히 투표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며 남은 기간 동안에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으로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연창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