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나이면 이제...한국식 관행 미국선 안 통해”
한국계 대기업의 한 계열사 뉴욕사무소에 근무하던 박모(58·남)씨는 요즘 변호사 사무실을 드나들고 있다. 얼마 전 회사 측으로부터 받은 ‘해고 통보’가 왠지 석연치 않다는 기분 때문이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인사고과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연말 보너스도 받았던 터라, 박씨는 회사의 신임이 당분간 더 이어질 거라 믿었다. 그러나 올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신임 법인장 취임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눈과 귀는 잘 작동하느냐?’ ‘요즘 한국에선 50대에 회사 관두고 치킨집 차린다’ 등 법인장이 내뱉은 말속에 ‘나이에 대한 부담’을 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법인장은 위로금 1만달러를 건네곤 노후준비 잘 하시라는 말을 남겼다. 그렇게 20년을 넘게 다닌 회사생활이 한 순간에 끝났다.
뉴욕과 뉴저지 일원에 둥지를 트는 한국계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가운데 최근들어 한국계 기업 내에서 ‘고령 직원 차별’ 사례가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파견된 일부 법인장이나 고위 임원들이 한국식 관행으로 인사관리를 하다 발생하는 고용 분쟁이 차지하는 경우가 상당수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달 17일 우리아메리카은행은 50대 여성 직원 홍모(59)씨를 해고해 연방 고용평등법 위반 소송<본보 11월26일자 A3면>에 휘말렸고, 이에 앞선 올 8월에는 건축내장재 생산 기업 LG하우시스가 60대 미국 여성을 해고한 게 문제가 돼 피소<본보 8월26일자 A3면>됐다.
또 얼마 전에는 30년 넘게 모항공사 화물창고에 근무하던 한인이 회사를 고발했으며, 코트라(KOTRA)는 해외 기관이라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최종 기각 판정을 받긴 했지만 고령 직원을 잘랐다는 이유로 오랜 법정 투쟁<본보 8월30일자 A1면>을 해야 했다.
그렇다면 왜 이같은 문제가 연일 터지고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한국계 기업의 임원들이 미국의 고용법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한국식 관행대로 일을 처리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우선 한국과 미국은 고령 직원에 대한 해고 문제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부터가 다르다. 정년제를 인정하고 있는 한국은 최근 법개정을 통해 60세를 정년으로 둘 것을 권장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이를 따르지 않아도 기업에는 아무런 해가 없다.
반면 미국은 연방 차원에서 40세 이상 직원이면 그 어떤 누구도 연령으로 인해 해고를 할 수 없도록 연령차별금지법(ADEA)으로 규정하고 있다. 위반할 경우 연방고용평등위원회(EEOC)의 엄격한 감독 하에 거액의 민사소송이나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고령직원을 해고할 땐 ‘구조조정’이나 ‘업무능력 저하’ 등의 정당한 사유를 내세운다. 그러나 문제는 일부 한국 출신 회사 관계자들 경우 지극히 ‘한국적’인 행동으로 피소를 자처한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노골적으로 나이가 많다며 압박을 주거나 ▶해고 전까지 인사고과 점수를 높이 주다가 갑자기 특별한 사유없이 해고하는 식이다. 또한 구조조정을 핑계로 해당 직원을 해고하지만 정작 젊은 직원을 그 자리에 대체해 결과적으론 고령이 주요 해고 이유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실제 우리아메리카 경우 지난달 25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해고된 직원 홍씨가 “조직에 융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정당한 절차를 밟았다고 해명했지만, 홍씨는 소장에서 회사가 임금 인상을 해줬고, 고과 점수도 높게 줬다며 59세인 나이가 해고의 사유라고 맞섰다.
이와관련 송 로펌의 대표 송동호 변호사는 “상당수 한국계 회사들이 한국식 관행대로 직원들을 관리를 하다가 소송에 휘말리는 경향이 있다”면서 “정기적인 직원 평가 시스템은 물론 차별금지에 대한 직원교육을 실시하고, 대규모 인원 감축시에는 그에 대한 근거가 확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지하 기자> A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