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술의 두 얼굴

2014-11-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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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창흠 / 뉴욕지사 논설위원

흔히 술에는 장사가 없다고 한다. 사람마다 주량이 다르겠지만, 누구나 술을 마시는 주량이 자신의 한계를 넘으면 이성이 마비돼서 자기제어를 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끌기 때문이다.

중국의 주도(酒道)에 보면 술을 마시는 양에 따른 심신의 변화를 해구(解口), 해색(解色), 해원(解怨), 해망(解忘) 등의 과정으로 표현하고 있다. 해구(解口)란 술이 한두 잔씩 들어가다 보면 입이 풀려서 말이 없던 사람이 말수가 늘어나는 상태다.

해색(解色)이란 색이 풀린다고 해서 아무리 못난 이성도 매력적으로 보일 정도로 취해서 남자들이 술집에서 종종 말썽을 피우는 수위다. 흔히 술을 마시면 덜 예쁜 여자도 예뻐 보이고, 못생긴 남자도 멋져 보인다는 이른바 ‘비어 고글’(beer goggle) 현상의 단계와 마찬가지다.


해원(解怨)은 가슴 깊이 감춰둔 섭섭한 감정이나 비밀들이 슬슬 고개를 내미는 정도의 취함이다. 무슨 일이 잘 안 풀리거나 화해를 할 때는 해원까지 술을 마셔야 성사가 되는 것처럼 술에 취해 한 말이 진실에 가깝다는 취중진담을 나누는 상태라 할 수 있다.

‘테이프가 끊겼다’고 말하는 단계의 해망(解忘)은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시어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태인 고주망태의 신체적 변화를 일컫는 것이다.

탈무드에 나오는 술 이야기를 보면 최초로 만든 포도주는 악마가 데려온 양, 사자, 원숭이와 돼지의 피를 거름으로 자란 포도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처음 마실 때는 양처럼 온순하고,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워지고, 조금씩 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추고 노래 부르며, 더 많이 마시면 돼지처럼 더럽게 뒹굴며 추해진다고 한다. 왜냐하면 술이 악마가 인간에게 준 선물이기 때문이란다.

사람들이 처음 술을 마실 때는 온순하다가도 적당량을 넘어 술이 술을 마시다보면 고주망태로 취하여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술이 과하면 실수하기 마련이라 자나 깨나 술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술은 예로부터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 하여 ‘모든 약 중에 으뜸’이라하고, 반대로 백독지원(百毒之源)이라 하여 ‘백가지 독의 근원’이라고도 했다.

술은 득과 실의 양면성이 있어 적당하게 마시면 신이 준 은혜로운 선물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악마의 재앙으로 변할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두 얼굴의 야누스 격이다. ‘술은 잘 마시면 약주(藥酒)요, 잘못 마시면 망주(亡酒)다’라는 말처럼 우리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술 한 잔이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는 얘기다.

술은 이처럼 그 양면성이 뚜렷한 것이라 하겠다. 그런 이유로 술에 대한 찬반론도 다양하게 펼쳐진다.


셰익스피어는 술에 대해 ‘네게 만약 적당한 이름이 없다면 우리는 너를 악마로 부를 것이다’라고 했다. 팔만대장경도 ‘술은 번뇌의 아버지요, 더러운 것들의 어머니’라 하고 있다.

이와 달리 술에 대한 예찬도 적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청동은 모양을 비추는 거울이지만, 술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고 했고, M.T. 키케로는 ‘술을 마시지 않는 인간한테는 사려분별을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술에 대해 비난과 예찬이 교차하는 것은 똑 같은 술이지만 어떻게 얼마나 마시느냐, 마시고 나서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술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나쁜 술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의지와 달리 술이 술을 마시게 해서 술의 노예가 되지 말고, 적당히 마시며 이길 수 있는 술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법이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술자리가 잦아진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좋지만 술이 세다고 자랑하다 보면 낭패 보기 일쑤다.

술을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라 자신을 비추는 거울로 인식하고 술 앞에서 겸손해지자. 술이란 야누스처럼 언제나 두 얼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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