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2주 반 동안의 한국출장을 마치고 돌아왔다. 지난 8년 매해 방문을 해온 지라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외국인이 한국에 간 느낌을 갖게 되는 순간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8년 전 아주 오랜만에 한국 방문을 했을 때는 고국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가족 친지들이 있다는 이유로 아무 준비 없이 흥분된 마음만으로 비행기에 올랐었다. 그러다 인천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모든 것이 너무나 생소해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모른다.
지금은 가끔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하지만 ‘빨리빨리’로 알려진 곳답게 일년만이라 해도 새로운 것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광화문에 있는 한 친지의 오피스텔을 방문할 때였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사람들이 저마다 혼자서 잽싸게 올라가 버리는 것이었다. 택시처럼 혼자만 타야 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상황인지 가만히 살펴보니 모두들 터치패드식의 안내판에서 뭔가를 하는 듯 했다. 알고 보니 터치패드에 올라갈 층수를 누르면 각자 타고 갈 승강기 번호를 일러주는 것이었다.
이 최신식 시스템 사용법을 알아낸 후 나도 뿌듯한 마음으로 승강기에 올라탔다. 그런데 습관처럼 뭔가 버튼을 눌러야 할 것 같았고, 얼떨결에 뭔가를 누른 것이 <호출>버튼을 눌렀지 싶다. 어떤 아저씨가 무슨 일이냐고 계속 물어오는데 상황파악이 되지 않아 멍청하게 있었더니 곧 잠잠해 졌다. 살펴보니 승강기 안에 버튼이라고는 <호출>밖에 없었다.
이 신기한 시스템과 내 엉뚱한 짓을 친구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얘기 했더니 오래 전에 본인들이 겪은 미국의 그 당시 하이텍 시스템들과의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특히 화장실의 시스템들이 새롭고 신기해서 여러 사람을 곤혹스럽게 했었다고 한다. 불 켜지는 센서에서부터 다양한 수도꼭지, 그리고 손을 말리는 방법 등 화장실이 이렇게 다양한 화젯거리를 만들어 낼 줄이야. 그 중 변기의 자동 플러싱 시스템에 얽힌 한 친구 얘기는 완전 대박이었다. 변기 물을 내리는 방법을 찾지 못해 나오지도 못하고 한참을 변기에 그냥 앉아있었단다. 그러다 하는 수 없어 포기하고 일어서니 해결이 되더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한국이 완전 하이텍 세상이 된 것이다.
첨단시스템 못지않게 매번 감탄하게 하는 것이 한국의 배달문화이다. 집에 가만히 앉아 음식도 시키고 장도 보고 쇼핑도 하는데 배달은 대부분 공짜다. 가까운 마켓에서 물건을 사면 바로 배달해준다. 대부분의 가게가 택배로 직접 물건들을 배송해주고 집에서 택배서비스를 불러도 된다. 그런데 이 배달료나 택배비가 미국에 비해 놀랍게 싸다.
대중교통이 주된 교통수단일 경우 특히 대도시에서는 편리한 배송시스템이야말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얼마나 충분히 그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일까. 그 대가가 이런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할 정도인지가 의문이었다. 돌아가는 것을 잘 모르는 내게도 다른 것에 비해 가격이 너무 싸 보였다. 과도한 경쟁 때문이라는 얘기도 들렸다.
이번 방문에서 사람들이 내게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은 머리였다. 일단 짧은 머리 스타일이 좋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염색 안 한 내 흰머리에 대해 한마디씩을 했다. “몇 달 아프고 나니 살살 살아야 겠다 싶었다. 괜히 내가 젊은 줄 알고 나댈까봐 염색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내 말은 별로 설득력이 없었다.
사실 내가 머리 염색을 하지 않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스스로 살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였다. 젊어 보이고 싶고 반짝거리고 싶은 것을 내가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 지가 궁금해서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 돈이나 성공이나 겉모습이나 이런 것들이 내 삶의 목적이나 목표가 되어 있지 않나 점검해 보고 싶었다. 이들이 목적이 되면 얼마나 삶이 고단한지 너무도 잘 알기에 그저 내 삶의 수단 정도로 나와 잘 타협하고 지냈으면 싶어서이다. 치장을 하고 싶은 어느 날 아마 염색을 하게 될 것 같다.
한국의 번쩍거리는 시스템들과 서비스들을 보며 왠지 내 흰머리 염색이 연상되었다. 사람대신 번쩍거리는 것들이 목적이 되어있지는 않는지 염려스러운가 보다. 우리의 고국이 세련된 시스템과 서비스만 넘치는 곳이 아니라 진정 사람들을 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곳이었으면 싶은 바람이 항상 마음 한켠에 있다.
김선윤 USC 동아시아 도서관 한국학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