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은 거울과 같아 마음 구석구석을 비춰주죠”
▶ 표현력 부족한 아이.노인들 치료에 효과적
미술치료사란 심리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불안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을 미술로 치료와 상담을 해주는 사람이다. 그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점토작업 등의 다양한 미술활동을 토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겪고 있는 갈등을 조절하고 자기표현을 촉진 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미술치료로 사람들에게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30대 한인여성이 있다. 그는 바로 김희영(33) 미술치료사다.
그림은 속일 수 없다
김희영 미술치료사는 1981년 대구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 호기심이 많고 어디든 다니기를 좋아했던 그의 장래희망은 탐험가, 여행가, 사진작가 등이 되고 싶었다. 학업보다는 세상살이에 더 관심이 많던 그는 대학 전공으로 미술을 선택한다. 그리고 미대 입시 시험에서 석고상을 보고 똑같이 묘사하는 과정에서 입시생 모두가 자기 얼굴과 성격이 나타나는 데생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는 게 단순히 아름답게 묘사하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뒤늦게 자신이 천직으로 이어진다.
그는 그 때부터 의식을 통하는 말은 사람들을 속일 수 있지만, 의식과 무의식의 중점에 서서 표현하는 그림은 남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는 “말은 거짓을 표현할 수 있지만, 우리가 그림을 그릴 때의 색깔, 사용하는 이미지를 통해서는 거짓말을 할 수는 없죠. 그처럼 그림이 갖고 있는 솔직함과 동양화를 전공하면서 배운 창의성 이론이 나중에 나의 천직에 큰 도움이 될 줄을 그 때까지는 몰랐다”고 말한다.
마음의 병을 치료 한다
젊은 시절 떠돌이 생활을 즐기던 그는 혼자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부족한 영어로 인한 불편을 해결하고자 미국유학 길에 나선다. 2006년 뉴욕으로 유학은 온 그는 미술치료 학업의 과정을 알게 된 후 뉴로셀 칼리지에 들어가 방랑생활을 접고 공부를 시작한다. 학비를 벌기 위해 힘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힘든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3년 동안의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고 미술치료사가 된다.
그는 미술치료라는 힘든 공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미술치료의 학습을 하면서 자신이 겪고 있던 방황 속에서 쌓인 마음의 병을 스스로 치유하는 미술치료 경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주는 것을 사명으로 여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림은 거울과 같아서 사람들의 마음 구석구석을 비추어 주고,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모습을 ‘미술’을 통해 정신, 마음(심리), 감정의 문제를 다루며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미술치료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미술치료를 통해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들, 스트레스가 쌓인 사람들, 자의식을 상실한 사람들 등 심신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치유를 돕기 위해 미술치료사가 됐다.
그는 “학문적 지식을 배우면서 느낀 내 스스로의 치유 경험을 토대로 더 질 높은 미술치료가 가능한 실력을 쌓아가면서 평생 동안 다른 이들의 마음의 병을 치료해 주는 미술치료사야 말로 바로 나의 천직이 아닌가 싶다”고 말한다.
그림검사가 아니다
그는 미술치료사가 된 이후에 뉴욕가정상담소 무지개집, 밀알의 토요일 사랑의 집, 미국 비영리 단체와 셸터 등에서 미술치료와 상담을 해오고 있다. 그런 그가 아직도 한인들이 미술치료에 대해 생소해 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심지어 미술치료를 잘 못 알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는 미술치료에 대해 한인들이 가장 잘못 알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미술치료=그림검사’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꼽는다. 대화도 어렵고 자기 문제도 이야기하기 어려운 장애가 있거나, 어린 아이가 자기의견을 표현하기 어려울 때는 상황이해를 위해서 그림을 통해 최대한 읽어내기는 하지만, 이건 파약의 개념이지 치료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미술치료를 위해 무심코 그린 그림에서 무의식을 읽어내고 심리적 갈등구조를 파악하는 것이지 그림을 보고 심리를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임을 설명하며 “미술치료는 그림을 통해 진단이나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상담자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문제점을 찾아내서 함께 치료하며 스스로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상담자 가운데는 나 그림 못 그려요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미술치료는 그림을 접한 경험이나 소질하고는 무관하다. 미술표현은 맞거나 틀릴 수 없고 잘하거나 못 할 수도 없다. 때문에 그림이나 미술이라는 단어에 전혀 부담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마음을 보여준다.
“말을 하지 않아도 미술은 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미술치료는 창의적인 과정에서 나타나는 치료적 요소를 활용하여 언어적인 한계를 넘기 때문에 미술치료는 창의적인 심리치료라 정의한다. 미술치료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상담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미술은 표현의 결과물인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에, 보다 효과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는 “미술치료는 말로 표현하기 부끄럽거나 표면으로 드러나기 힘든 감정들을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표현력이 부족한 한인 남녀노소 모두에게 효과적”이라며 “이민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녀와의 언어적, 문화적 갈등이 미술을 통해 나타냄으로써 가족 간의 이해를 돕고, 노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치매예방과 지연에 큰 효과를 준다”고 말한다.
모두가 다른 의미
그는 그 동안 미술치료를 하면서 가장 기억나는 일로 할머니와 자폐아동의 사례를 꼽았다.
할머니 사례는-말도 못하고 손이 굳어서 펜도 못 잡던 할머니가 매주 그룹치료를 할 때도 멍하니 앉아만 있더니, 손을 잡아주며 같이 그림을 그리고 손짓발짓으로 설명을 해주던 어느 날 갑자기 손을 잡고는 눈으로 말을 하더니 그 이후부터는 매시간 열정을 다해 작업하고 아주 특이하고 재미있는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자폐아동의 경우는 의자에는 절대 앉지 않고 땅에만 앉고, 의사소통은 물론 눈 맞춤도 하지 않을 정도의 심각한 자폐아동이 혼잣말만 하던 어느 날 갑자기 손을 잡고 의자에 앉아 먼저 그림을 그리자고 한 것.
그는 “미술치료는 개인들의 개별적 사항에 대한 접근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사례별로 모두 다른 의미를 갖는다”며 “기억에 남는 사례로 꼽은 것은 미술이 사람의 마음을 크게 열고 문제인식을 강력히 환기시키는 강력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자신을 사랑하자
그는 흔히 미술치료는 많은 한인들이 아픈 사람이나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들만 하는 것으로 잘 못 알기가 쉽지만 대상은 누구나 해당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낯선 타국 땅에서 살고 있는 이민자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심리적인 문제가 있기 마련이기에, 이들에게 미술치료는 미술작업을 통한 가장 간접적이고 안정적인 방법으로 자기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풀어내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모두 말하지 못하는 상처나 기억 하나 정도는 갖고 있다. 그 상처가 어느 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녀, 배우자, 부모들에게 가시 밖인 말이나 분노, 미움, 상처가 되어 전달되어 질 수가 있다.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고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또 다른 방법의 사랑 나눔, 정신건강 유지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조언 한다.
미술을 사랑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
지난해 결혼해 11개월이 된 아들을 두고 있는 그는 “행복이란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도와주고 사랑하며 아픔을 안아주며 함께 균형 있게 어울려 사는 것”이라 꼽는다. “결혼은 하나님의 맺어주었으니 하나의 비전을 갖고 평생 함께 사는 것’이라는 그는 ”미술치료사는 미술을 사랑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미술치료사를 평생 할 수 있는 천직이라 여기며 살고 있다는 그는 “한인사회에 커뮤니티센터가 생겨 한인뿐만 아니라 타 인종 모두를 아우르는 미술치료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라고 귀띔한다.
인터뷰를 끝내며 “누구나 갖고 있는 아픔과 상처들은 얼마든지 치유될 수 있고 바뀔 수 있고 스스로 변화 시킬 수 있다. 그 변화의 주체는 바로 자기 자신임을 잊지 말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한인들을 위해 더욱 열심히 살겠다”고 말하는 그는 역시 미술치료사가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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