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4-10-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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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인에게 영국식 정원을 바친 사내도 있지만 사랑 대신 무엇을 바친다는 것, 그것을 위해 서쪽하늘에서 매일 노을의 붉은 노역이 펼쳐지고 저녁을 데려오는 바람이 검은 춤을 춘다는 것?놋쇠 울음소리와?보잘 것 없는 깃털을 가진 보켈콥바우어 새는 사랑을 위해 보켈콥바우어식 정원을 암컷에게 바친다 이끼냄새를 풍기며 부리만 가지고 꾸민 비밀정원, 암컷은 딱정벌레 등껍데기와 병뚜껑과 크림색 곰팡이와 달팽이 흰 껍질이 무르고 붉은 과육의 색깔과 얼마나 잘 어울리나 살펴본 후에도 쉽게 정원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

높은 가지에서 내려다보며 자신의 정원을 끊임없이 치장하는 보켈콥바우어의 취향으로, 세계가 쓰고 버린 시간들로 너는 허공에 문자의 정원을 만든다 한 노인의 거처에서 실어낸 쓰레기들이 일 톤 트럭으로 네 대가 넘었다는 신문기사가 실리기도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생의 문장들도 빠짐없이 모아 놓으면 자신의 무덤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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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정 (1963-) ‘보켈콥바우어식 정원’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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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아 뉴기니에 사는 바우어 새는 암컷을 위해 정원을 만든다. 나뭇잎, 이끼, 딱정벌레의 껍질 등 숲의 버려진 것들을 모아 정원을 만든다. 숲속의 건축가라고 불리는 바우어새의 정원, 그것은 구애의 도구라서가 아니라 쓰고 남은 생의 쓰레기들로 지어진 사랑의 선물이라는 점에서 신비성이 있다. 쓰레기, 구애, 사랑, 죽음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바우어새의 신비성은 우리 생의 신비를 뒤적이게 한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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