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헌 (맨체스터대학 철학교수)
플라톤이 쓴 ‘공화국’에는 그가 생각하던 이상국가론이 잘 펼쳐져 있다. 국가의 궁극적인 목표를 ‘정의의 실현’으로 설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모든 시민이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 할 때 그 목표가 이루어진다는 목적론이 그 책의 핵심 이다. 방만한 자유와 분명한 원칙도 없이 바람에 흔들리는 배와 같은 민주주의를 플라톤은 부패한 정치체제로 생각하고 경멸했다.
국가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아서 선장은 선장의 책무를, 항해사는 항해사의 책임을 다 할 때, 배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승객들은 선장과 항해사의 경험과 전문지식을 존중하고 배 안의 규칙을 잘 지켜서 항해에 협조해야 한다.
만일 배에 탄 승객들이 선장과 항해사의 경험과 전문지식을 무시하고, 항로를 군중의 의견에 따라 결정하거나 목소리 큰 사람의 선동에 따라 결정 한다면 그 배는 항로를 벗어나게 되고 결국 파선할 것은 뻔 한일이다. 각자가 자기의 자리에서 맡겨진 책임을 다 할 때 그 곳에 이루어지는 질서와 조화가 배를 앞으로 가게 하는 힘이라는 말이다.
세월호 사건에서부터 계속된 한국의 혼란과, 얼마 전 UN을 방문한 박대통령을 맞았을 때 우리 동포사회가 보여주었던 일련의 아름답지 못한 일들을 바라보며, “하나가 된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우리 한인들은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우리 한민족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묘한 절망감이 늦가을 안개처럼 나를 감싸 안았다.
“하나가 되자” 는 뜻은 각 개인의 시각이나 생각하는 방향이 다르고, 또 믿는 바가 서로 달라도 우리 민족이 함께 바라보고 이루어야 할 큰(한)목표에 합의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뜻 일 것이다. 그 한(큰)목표가 무엇인지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시급한 것이 민족의 통일이요 이를 준비하기 위해 성숙하고 풍요로운 민주사회를 이루어야 한다는 목표를 부정할 한인은 없을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선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가를 확인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농부가 밭 가운데에 서서 농사는 짓지 않고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 회사원이 회사 일은 제쳐놓고 데모대에 합류 하여 구호나 외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또 시골 양조장 주인이 돈을 많이 벌었을 때 국회의원에,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돈을 번 사람은 대통령에 출마 하는 경우와, 미국에 이민 정착 하고 생활 기반과 가족이 모두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한국 정치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반정부 구호를 외치고 다니는 이 모든 경우는 우리가 선 자리가 어디인지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정신적인 미아(迷兒)라는 말이다. 미국에 사는 우리는, 한국이라는 ‘배’의 밖에 있는 사람들 이다. 그 밖이 우리가 선 자리이다. 따라서 그 배의 선장이나 항해사를 바꾸라고 요구할 아무런 권리나 의무도 없는, 심하게 말하면 그 배에 정서적인 유대감이 진한 구경꾼일 뿐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한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성실 하게 수행하여 우리 이웃으로부터 존경 받는 미국인으로 잘 살아가는 것이다. 모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없을 수 없으나, 한국을 위한다는 허망한 명목으로 뉴욕 거리에서 한국을 비방하는 데모를 하기 보다는, 이웃 한인 공동체에 애정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요, 우리 2세.3세들에게 한인의 후예라는 자긍심을 심어주는 교육에 더 힘을 쏟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한국 정치판에서 일어나는 당쟁을 흉내 내어 이 작은 동포사회 속에 편을 가르기 보다는, 서로의 약점을 감싸고 포용하며 크게 하나를 이루는 한인사회를 이루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