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교인 칼럼] 우남수 목사 ㅣ 실종된 평화의 길을 되찾자

2014-10-15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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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과 폭동의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어 세계가 추구하는 세계 평화의 길은 점점 요원해지는 것 같다. 이라크에 침공해 나라를 이루겠다는 IS의 무차별한 살인, 가까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분쟁 사태, 아프리카 무슬림들의 폭력 행사, 부족과 나라 사이의 수많은 내전과 군벌들의 폭력, 남미의 마약과 관계된 폭력, 막 시작된 홍콩의 민주화 시위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고 있다.

특히 망설이던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아 내 급진 수니파 이슬람 국가(IS) 반군 기지에 대한 공습을 결정하였으며, 이것을 시작으로 이라크 상공에만 머물던 미군의 작전이 IS의 본거지인 시리아로 본격 확대 되었고 앞으로 얼마 동안 또 어떻게 마무리 될지 모르는 전쟁을 시작했다.

문제는 미국이 개입됐던 그 동안의 전쟁들-월남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의 결과는 기대했던 평화의 성취가 아니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마무리 지어졌기에, 이번 전쟁이 또 어떤 양상으로 탈바꿈되고 끝이 날지가 심히 걱정되는 것이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볼 때, 한편에는 성 프란체스코의 ‘평화의 기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나를 평화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사람들, 그 누군가의 평화를 위해서 희생의 도구가 되어 살기를 각오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전쟁의 기도’를 좋아하며 따르는 무리가 있어 세상은 결코 평화로울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여, 우리의 포탄이 저 놈들을 갈기갈기 찢어 피반죽을 만들어 버리게 해 주십시오.” 그의 기도는 계속된다. “웃음 꽃이 피었던 이 들판을 애국자들의 싸늘한 시체로 꽉꽉 채우게 하여 주십시오.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가 과부가 된 여인들의 심장을 슬픔으로 가득차게 하여 주십시오. 주여, 그들의 희망을 고갈시켜 주시고 그들의 모습을 시들게 하여 주십시오.” 이 얼마나 소름끼치는 잔인한 기도인가.

노벨 평화상이 매년 세계에서 평화를 만든 사람에게 주어지지만, 실로 세계 전체에 진정한 Peace Maker의 수는 너무나 적다. 또 전쟁이 계속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심을 같은 무기와 침략으로 서로 대응하기 때문이며, 그렇게 해서는 전쟁은 결코 종식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9.11 사태에서 경험한 대로, 경제 전문가 제임스 푸플라바(James Puplava)는 앞으로의 전쟁은 그 동안의 방법과 다른 양상임을 지적했다.

어떤 한 국가나 민족이 폭력이나 전쟁을 독점할 수 없게 되고 소규모로 이곳 저곳에서 일어나는 테러리즘에 대처해야만 할 것이다. 원료공급원, 종교, 경제 시스템 같은 것들로 인해 각 나라들이 테러리스트나 게릴라와 강도들을 대항해서 싸워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래서 21세기의 전쟁은 멀리서 일어나는 전쟁의 소식을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서 일어나는 전쟁이 될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평화의 왕으로 오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던 예수님의 ‘평강의 왕 되심’을 목소리 높여 외쳐야 될 것이다. 예수님의 생애의 메시지는 무력이나 원수에게 비폭력적으로 대하는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더 나아가, ‘적극적인 사랑’이었다.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을 대라. 오 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를 가라.” 이 모든 것들이 폭력적인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방법이었다.

전쟁과 폭력이 점점 만연해가는 이 시대에, 주님의 평화의 메시지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마지막 폭력의 시대를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각자의 개인이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평화의 도구로 사용되어지는 길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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