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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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의 걸프전’과 오바마

2014-09-2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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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세철 논설위원

“…천하대세란 분열된 지 오래면 반드시 통일되고 통일된 지 오래면 또 반드시 분열되는 법이다…” 50, 60대 장년층들이면 대부분이 알고 있는 연의 삼국지의 첫 문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통일과 분열, 치세(治世)와 난세(亂世)가 교차된다는 역사에 대한 중국식 순환논리가 흠뻑 묻어있는 게 소설 삼국지의 서문이다.

케케묵었다. 그런 문구가 그런데 꾀나 새삼스럽게 들린다. 빠르다. 가속도가 붙은 것 같다. 국제기상도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그 변화가 그런데 어딘가 네거티브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40년 가까운 군 생활을 돌이켜 볼 때 지금 같이 위험한 시기를 찾아볼 수 없다.” 마틴 템프시 미 합참의장의 말이다.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의 경고는 더 준엄하다. 국제사회가 이처럼 온갖 위기와 위협에 직면한 시기를 일찍이 경험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Grave New World’- 유럽의 한 고위 외교관이 한 말이다. 앞으로 펼쳐지는 세상은 ‘Brave New World’가 아닌 ‘암울한 새로운 세계’(Grave New World)가 된다는 것이다.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유엔안정보장이사회는 거의 만장일치로 규탄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리고 미국 주도 반(反)사담 동맹군 결성에 34개국이 참여했다. 1991년의 상황이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침공, 병합했다. 우크라이나의 영토주권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그 러시아의 만행을 규탄하는 유엔결의안에 58개국이 기권했다. 결의안에 반대한 나라는 11개였다. 무엇을 말하나. 전 세계적인 힘의 균형이 크게 변했다는 사실이다. 20여년 세월동안에.

국제정치에서 인식(perception)은 실재(reality)보다 더 중요시된다. 미국시대는 끝났다는 것이 오늘날의 일반적 인식이다. 유럽은 쇠망의 길을 걷고 있고 새로운 세력이 부상하고 있다는 것 역시 일반화 된 인식이다.

그 ‘미국시대는 끝’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한 게 오바마의 해외정책 노선이다. 틈만 나면 ‘미국의 한계를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겸양의 미덕’ 과시와 함께 뒷걸음을 쳐왔다. 그 공백을 다른 열강이 채워줄 것을 기대하면서.

그 진공사태를 메우고 나선 것은 그러나 러시아다. 중국이다. 머뭇거리는 오바마를 면밀히 주시해왔다. 그런 후 푸틴 러시아는 행동에 나섰다. 크림반도 합병, 우크라이나 분리주의 선동이다. 남중국해에서, 또 동중국해에서 영토분쟁을 일으켰다. 중국이다.


머뭇거리는 오바마를 주시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슬람이스트 극렬세력도. 시리아가 화학무기를 사용해도 오바마는 액션이 없었다. 시리아 내전의 혼란과 공백기를 틈타고 수니파 이슬람이스트 극렬세력의 대대적 반격이 이루어 진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그 같은 잔학상은 결코 용서될 수 없다.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는 힘의 언어밖에 없다. 그 죽음의 네트워크를 군사력을 통해 해체할 것이다.” 뒷걸음만 치던 오바마가 결국 전쟁을 선언하고 행동에 돌입했다. 시리아 거점에 대한 대대적 공습시작과 함께 수니파 이슬람이스트 극렬단체 ‘이슬람국가’(IS)에 대한 본격적 응징에 나선 것이다.

그 응징- 실제에 있어 제3의 걸프전-은 과연 성공리에 매듭지어질 수 있을까. ‘반드시 성공을 해야만 한다’- 많은 서방 관측통들의 희망성의 지적이다.

‘이슬람국가’라는 죽음의 네트워크 분쇄는 미국의 이해, 더 나가 서방의 이해와 직결된다. 중동지역 질서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보다 큰 그림으로 볼 때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세계 안보에 대한 미국의 공약은 굳건하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미국시대는 끝났다는 것이 일반화된 인식이다. 그 미국 쇠망론에 일침을 가할 기회를 가지게 됐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의 지적으로 어쩌면 대통령으로서의 오바마에 대한 평가도 이 제3의 걸프전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하고 있다.

‘응징은 과연 성공적으로 매듭지어질 수 있을까’- 상당한 우려가 따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하나가 여론동향이다. 2차 세계대전을 예외로 하고 어떤 전쟁이든 1년 이상 높은 지지율을 보인 적이 없다. 여론은 언제든지 바뀔 수가 있다는 게 한 문제다.

전쟁의 목표가 불분명하다. 전략이 모호하다. 지상군 투입을 놓고 내부에서 찬반이 엇갈린다. 전쟁이 장기화 될 것이다. 이런 지적들도 전망을 흐리게 하는 요소들이다.

이 같은 숱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에 국제사회는 새삼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슬람주의 극렬세력의 준동을 막아낼 나라는 중국도, 러시아도 아니다. 오직 미국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 미국 대통령의 행보를 전 세계는 주시하고 있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나. 그 의지, 또 방향성에 따라 앞으로 펼쳐질 세계는 ‘Grave New World’가 아닌 ‘Brave New World’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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