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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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이의 상실과 애도

2014-08-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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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니카 이 / 심리상담사

20년을 알고 지낸 지인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2년 반 전 암 선고를 받고 항암 치료 대신 ‘quality of life’를 택한 후 가족들과 여행하며 추억을 만들고 매일의 일상을 겸허하게 살아내신 분이 이제 침대에 누워 남겨질 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계셨다. 앉을 기운조차 없어 누워서 방문자를 맞으시는 모습이 어찌나 담담하고 맑은지 몇 년 전 읽었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주인공 모리 교수를 떠오르게 한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특히 세월호 사건이나 여객기 사고처럼 ‘어느날 갑자기’식의 상실은 더욱 힘들고 혼란스럽다. ‘살아 있는 동안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상실 (bereavement)’ 앞에 우리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을 경험하는데 이것을 ‘애도(grief)’라 한다. 즉 애도는 상실에 대한 정서적 고통 반응이다.

상실에 반응하는 애도의 방법과 표현은 문화와 개인에 따라 다르다. ‘마지막 강의’의 랜디 포시 교수는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남겨질 아내가 겪게 될 상실과 애도를 돕기 위해 함께 상담을 받는다. 추도모임에서 떠난 사람과의 추억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서양의 문화와는 달리 동양의 문화는 떠난 이에 대해 말하는 것을 피하고 혼자 삭히는 경우가 많다.


‘인생수업’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는 애도 과정을 다섯 단계로 설명한다. 첫 단계는 상실을 인정하지 않는 ‘부정’ 단계다. 충격과 함께 모든 감정이 마비되고 현실을 부정하게 되는데 이는 엄청난 사건 앞에서 하루를 견디기 힘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둘째는 ‘분노’ 단계다. “어떻게 나에게… 왜 나에게…”란 질문을 끝없이 던지며 ‘신’에게 분노하고 사랑하는 이를 지켜주지 못한 ‘자신’에게 분노하며 심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 분노의 과정은 치유에 필요한 과정이다. 종교심이 깊은 이들 중에 ‘믿음이 깊으면 분노의 과정 없이 치유가 이뤄진다’ 생각하기도 하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의 해결 과정 없이 온전한 치유는 힘들다.

다음은 ‘타협’과 협상의 단계다. “그 사람을 다시 돌려받는다면 더 착하게 살고 잘 할텐 데…” 등 일어날 수 없는 협상을 계속한다. 시간이 더 흐르면 자포자기 상태인 ‘우울’에 빠졌다가 결국 운명을 받아들이는 ‘수용’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사람에 따라 위의 몇 과정이 함께 일어나기도 하고 순서가 바뀌거나 반복되기도 한다. 스스로 돌아보며 떠난 이와 상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때 충분한 감정이입, 공감, 지지와 격려를 받는 것이 중요하기에 전문 상담사를 찾거나 목사님, 신부님 같은 영적 멘토를 찾기를 권한다.

애도를 돕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마음에 떠오르는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솔직하게 써보는 애도일기나 떠난 이에게 쓰는 편지도 도움이 된다. 상실과 애도를 주제로 한 책이나 영화를 보며, 주인공의 회복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치유 과정을 이해하는 것도 좋다. 비슷한 아픔을 겪은 이들과의 모임을 갖거나 기일에 그와 함께 한 일을 생각하며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의식(ritual)을 만드는 것도 좋다.

“30분 동안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그치지 말라”는 말처럼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분노하는 과정을 거친 후 상실의 상태를 인정하게 될 때 비로소 떠난 사람을 진심으로 떠나보낼 수 있을 것이다.

맑고 곱던 그 분과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과 추억들을 회상하며 이제 그를 떠나보낼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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