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은 비의 꽃이며 엷은 그늘과 습기가 많은 땅에 어울리는 꽃이다. 수국은 여름, 특히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에 잘 자라며 물을 적게 주거나 공기 중의 습도가 낮으면 잎이 금방 시들해진다. 수국은 직사광선을 싫어하여 큰 나무 아래나 담장 밑 같은 반그늘에서 처연히 피는 꽃이다.
이렇게 습기 진 그늘을 좋아하는 수국답게 수국의 꽃말은 우울함을 담고 있다. 흰 수국은 변덕과 변심, 청색의 수국은 무정함을 뜻하고, 분홍빛 수국은 소녀의 꿈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수국이 화려하고 청초한 모양새와는 달리 울적한 꽃말을 가지게 된 것은 자라는 토양의 산성도에 따라 같은 품종이라도 꽃 색깔을 달리하는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
수국은 흙이 중성이면 흰색, 산성이면 청색, 알칼리성이면 분홍색의 꽃을 피운다. 수국 주위에 백반을 묻고 물을 주면 흰색의 꽃이 푸르게 변하고, 석고 가루를 묻고 물을 주면 며칠사이에 꽃이 붉게 변한다. 이를 가리켜 사람들은 수국을 칠 변화라고 하며, 옛사람들은 수국을 지조 없는 꽃으로 힐난하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청초하면서 탐스러운 수국이 마냥 좋아서 지난 5월의 어느 날 나의 집 근처에 있는 화원에 가서 흰색, 연한 청색, 분홍색의 세 그루의 수국을 사서 나의 집 뒷뜰 햇빛이 잘 드는 양지바른 꽃밭에 나란히 심고서 영양제를 주고, 물도 자주 공급하며 정성을 다하여 가꾸었는데, 무슨 영문인지 심은지 2주 가량 지나자 꽃의 색깔이 변하고 그 탐스럽던 꽃이 시들기 시작했다. 나는 토양이 맞지 않은가 생각하고서 더욱더 자양분이 가득한 흙을 보강하고 영양제를 더 자주 공급해 주었건만, 한 달이 지나자 결국 죽고 말았다.
나는 원인을 알고자 화원의 주인인 글렌 씨를 찾아갔다. 백발의 노인은 나를 쳐다보고 빙그레 웃으며, “ 수국은 다습하고 응달진 곳에 심어야 합니다 ” 라고 답해 주었다.
파스텔 톤의 꽃잎을 함초롬히 뽐내는 수국에는 그의 꽃말처럼 수국으로 인한 본의 아닌 연인과의 이별을 당한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어느 예쁜 처녀가 한 사람의 멋진 남자를 사귀고 사랑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그 남자가 사랑의 징표로 하얀 수국의 꽃다발을 사랑하는 처녀에게 선물했다. 이 선물을 받은 처녀는 수국의 꽃말을 익히 알고 있었는데, 처녀는 이 남자가 아마도 무정하거나 쉽게 변심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일 것이다 라고 단정하게 되었다. 매력적으로 보였던 그 남자의 면모마저 아둔하게 느껴진 처녀는 그를 멀리하게 되었으며, 수국의 꽃 선물이 이별의 이유가 되고 말았다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있다.
아름다운 수국을 연인에게 선물했다가 실연당한 어느 남자로부터 구전된 수국의 우울한 꽃말은 수국이 주는 지극히 탐스럽고, 청초하고 화사한 아름다움에 대한 못난 다른 꽃들의 시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꽃말은 꽃말일 뿐, 나는 나의 집 뒤뜰 큰 나무아래의 그늘진 곳에 세 그루의 수국을 심을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내년 여름에 화사하게 꽃을 피어줄 아름다운 수국을 머릿속에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