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강렬한 감성의 에너지, 표현주의

2014-07-2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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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와 삶

▶ 박혜숙 / 화가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한 현실과 시대가 규정하는 막연한 당위의 세계에서 벗어나 춤을 추는 듯한 도취와 전율의 세계, 야수적인 강렬한 색채와 거친 필치로,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는 내면의 격정을 그리는 표현주의 회화전이 LACMA에서 열리고 있다. 빨강, 파랑, 주황, 보라의 보색들이 가득한 이 그림들의 전시는 LA에서는 드물게 보는 심도있는 회화전이다.

“자유롭게 살며 자유로운 사람들을 자유로운 필치로 그리겠다” 라는 표현주의 화가 키르히너의 말대로 강렬한 색채와 거침없는 필치로 그려낸 그림들이 뮤지엄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림의 역사상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파, 표현주의의 시대가 기장 아름다운 그림이 탄생한 시대라고 화가 친구들과 동의하기도 하는데,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권하고 싶은 좋은 전시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처음에 반 고흐의 밀밭 그림이 보이는데, 당시의 유럽 화단에 고흐의 출현은 마치 번개가 친 것 같았다 라는 설명으로 전시가 시작된다. 역시 고흐는 천재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노오란 밀밭의 전경은 모든 삶의 에너지가 집중되어 자연과 화가의 강렬한 필치가 완전히 일치되어 있는 깨어난 에너지로 그 작은 그림이 타오르듯 빛이 난다.

어찌나 맑고 아름다운지 새삼 고흐의 그림을 사랑하게 되고, 이 그림 한 장을 본 것으로도 전시회장을 찾은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표현주의란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객관적이기 보다는 주관적이고, 조화와 균형보다는 내면의 감성을 중시하는데 햇빛이 밝아 자연을 바라보고 관찰하는 경향이 강한 남부 유럽에서보다는 음울한 북부 독일에서 시작되었다. 바라보는 외부의 세계를 관찰하고 묘사하기보다는 내면에서 출렁이는 격한 감정을 표현하여 명징하다기보다는 격정적인 화면을 그려내는데 프랑스에서는 야수적으로 그린다 하여 야수파라고 불리 운다.

야수파인 마티스의 찬란한 색조와 격한 필치의 풍경화, 세잔, 고갱, 에밀 놀데, 키르히너, 칸딘스키 등 보석처럼 빛나는 강렬한 그림들에 가슴이 뛰는 기쁨을 누리며 예술은 역시 자연과 인간을 다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에밀 놀데의 밤바다 그림을 좋아하는데, 강렬하고 격한 필치의 밤바다 그림 앞에 한참동안 서있었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이전에 이렇게 혁명적이고 새로운 그림들을 그린 작가들이 얼마나 몰이해로 고독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나치에 의해 퇴폐작가로 낙인 찍혀 수많은 그림들이 몰수되고 불태워지기도 한 작가들의 살아남은 작품들인데, 기계문명으로 더욱 더 자연과 인간으로부터 소외된 현대를 살아가며 원시적 생명력으로부터 더욱 멀어진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생생한 삶의 에너지를 증폭시켜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는데, 노랑, 빨강, 파랑, 보라의 보색들이 강렬한, 그리고 너무나도 인간적이기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림들 앞에 한참 서서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강렬한 감성의 에너지를 느껴보기를 권한다.

LACMA에서는 마침 조선시대 한국 미술품 전시도 있어서, 서양 미술에 대비되는 온유함과 고결한 기품이 넘치는 조상들의 작품을 감상했다. 한 선으로 거칠고 유연하게 그려나간 포도나무 병풍 그림엔 서양의 표현주의를 넘어선 우주적 정신 공간의 장대함이 있고, 서산대사의 진영이라는 인물화의 드높은 기품과 힘, 장식미의 극치를 보이는 화면 구성을 보며, 방금 경탄했던 세잔의 농부 그림에 비교해, 방법은 다르지만 추구하는 세계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존재의 드높은 기개와 심성의 깊이… 인간과 자연의 회복을 일깨우는 표현주의 그림들과 여백의 미가 아름다운 조선시대의 미감을 함께 감각하는 일이 오늘의 미술이 지향해야 할 세계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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