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생활 20년

2014-07-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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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경 공인회계사

잉크가 조금 번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선명하게 미국 입국 날짜가 여권에 찍혀있다. 1994년 6월29일 뉴욕 JFK공항으로 입국했다. 이틀 후 시카고로 왔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미국 파견 임무가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3년 후 계획을 바꿨다. 10년만 열심히 일해서 큰돈을 벌자,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 편하게 살자. 배부른 머슴 생활을 청산하고 싶었다.

그때는 미국이 쉬워 보였다. 조금만 머리를 쓰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섣부른 생각이었다는 것을 아는데 반년도 걸리지 않았다. IMF 사태의 간접 피해자가 되었고, 모든 계획을 바꿔야 했다. 얼마 되지 않던 자본금은 동이 났고, 하던 일을 접어야 했다. 자존심은 상처를 입었고, 젊은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무엇보다도 먹고 살 일이 걱정이었다.

미국회계사가 되었다. 곰팡내 나는 남의 장부를 뒤적이는 일에 젊음을 바칠 수 없다며 분기탱천하여 대학 도서관을 박차고 나온 지 20년 만이었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일자리가 필요했지만 마흔 살짜리 외국인을 받아주는 회사가 없었다. 그들에게 보여줄 지식과 경력이 없었다. 스펙이라도 만들어야 했다. 회계사 자격증이면 그들에게 보여줄 뭔가가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회계사 자격증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전문적 지식은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110여 통의 이력서를 쓴 후에야 회계사 열 명짜리 작은 사무실에 취직할 수 있었다. 기초적이고 간단한 일이 주어졌지만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업무를 집으로 가져왔다. 밤을 새워 연구해서 다음 날 아침 매니저가 출근하기 전에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근무 시간을 쪼개서 대학원도 다녔다. 하루 4시간이상 잔 적이 없었다. 모자란 잠은 주말에 보충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 십 수 년이 지났다. 큰 어카운팅 펌도 다녀봤고, 생활에 여유도 생겼다. 30대 중반의 파릇파릇하던 젊은이는 50대의 중년이 되었다. 검은 머리보다 흰 머리 숫자가 더 많아졌고, 돋보기가 없으면 큰 글자조차 읽을 수 없게 되었다. 계획하던 10년이 두 번 지났지만 큰돈은 요원하기만 하다. 10년이 더 지나도 큰돈은 못 벌 것 같다. 대신 마음의 여유를 얻었다.

이제야 미국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조급해 하지 않고, 남 눈치 보지 않고, 욕심 부리지 않고, 법을 지키고, 남을 배려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오늘 해야 할 것을 오늘 해 놓는 것.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는 모르지만 머지않아 결과가 찾아온다. 아니, 기회가 찾아온다. 준비하고 기다려온 사람만이 기회가 왔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 미국생활 20년만에 깨달은 진리이다.

한 20년쯤 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워본다. 익숙한 산과 물, 친근한 사람들 틈에서 은퇴생활을 하다, 내가 태어난 땅속으로 묻히는 꿈을 꾸어본다. 10년쯤 후에 돌아가고 싶지만 무리한 바람인 것을 잘 안다. 바라고,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으면 기회가 온다는 진리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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