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탐욕, 그 무서운 파괴력

2014-07-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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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효 / FDA 약품심사관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애쓴 레오 톨스토이의 “사람에겐 얼마만큼 땅이 필요 한가”라는 소설은 탐욕이 어떻게 죽음을 불러오는지 생생한 교훈을 준다. 탐욕은 자기뿐만 아니라 때로는 타인까지도 파괴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사람의 DNA에는 탐욕이 각인되어 있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그것은 인류의 조상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이 금지한 선악과를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해서 욕심으로 따 먹은 결과이다.

우리를 슬프고 참담하고 심히 부끄럽게 만든 세월호 사건 역시 그 근본 원인은 재물의 축적을 위해 판단력을 잃은 선주, 선박 운송업자, 관계 기관 등 많은 관련자들이 양심도, 생명의 존엄성도, 사회의 규례와 법도도 내버리며 추구한 탐심에 있다.


더 크게 생각하면 대한민국 사회에 총체적으로 만연해 있는 이러한 부도덕과 사회윤리의 마비가 극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므로 나와 너, 우리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이 사건을 정치적 이슈로 몰고 가 대통령을 위시해 현 정부에 맹공을 가하는 것은 이 사건을 이용해 어쩌면 자기들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기 위한 또 하나의 탐심 같아서 마음이 껄끄럽다. 우리 조국을 비난하는 글을 미국 신문에 게재하는, 말하자면 누워서 침 뱉기 식의 행위에는 분노가 치민다.

탐욕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생각된다. 만일 무인도에서 혼자 산다면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탐심은 어쩌면 남과 비교하는데서 출발하는지 모르겠다. 탐심은 돈과 권력과 명예가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흔한 것을 보면 남과 비교함과 더불어 현재 가진 것을 만족해하지 않는데서 비롯된다.

또한 탐욕의 사람들은 본인들의 탐심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정도 탐심은 누구에게나 흔히 있다고 자위한다. 또한 조그마한 탐욕의 맛을 본 사람은 더욱 쉽게 큰 탐욕으로 옮겨가게 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인생은 잠깐 왔다 가는 나그네 길, 곧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존재임을 잊기 때문에 탐욕의 노예가 된다고 본다. “지금 부요하고 온갖 풍요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선가 그들 때문에 가난에 굶주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라는 것을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

탐욕은 재물을 위시해서 권력, 명예, 지위, 또 육신의 정욕 등 각 영역에 쉴 새 없이 검은 손을 뻗친다. 심지어 영적 지도자들인 목회자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들이 목회사역을 하며 과연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의 의(義)나 성취감으로 인한 만족, 또는 세인의 박수갈채를 위한 사역인지 늘 정직하게 자기의 심장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일본의 기독교 작가 엔도 슈샤꾸는 죄성을 지닌 우리의 가슴 깊은 곳을 예리하게 들여다 보고 “인간은 어느 상황에서도 허영심을 버리기 쉬운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허영심과 더불어 탐욕을 끼워 넣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예수는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 하니라”라고 말했다. 소유의 개념은 꼭 물질에만 국한되지 않고 명예나 권력, 또는 지위로 확대 해석해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 가르침을 가슴에 담고 그렇게 사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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