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희망이라는 불치병

2014-07-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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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선 / 교육전문가

▶ 여론마당

아프리카의 밀림 지대에 한 영국 병사가 파견되었다. 어느날 그가 소속된 부대 전원이 밀림 한가운데에서 적들에게 포위당해 전멸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람들은 파견 병사 역시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6개월이 지난 후 그 병사는 혼자서 밀림을 헤쳐 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를 발견한 사람들은 그의 손에 꼭 쥐고 있던 지도를 보고 생각했다. “저 지도가 병사를 살린 거구나!”하지만 그가 펼쳐 보인 지도는 영국의 지하철 지도였다. 사람들이 의아해 묻자 그가 대답했다. 자신이 험난한 밀림을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지하철 지도를 보며 살아서 조국에 돌아가야겠다고 품었던 희망 때문이었노라고. 젊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브리토 체인점의 종이봉투에 이 희망에 대한 메시지가 인쇄되어 있다.

매일 매시간 뉴스를 통해 듣는 전쟁과 살인과 폭력, 빈곤과 질병의 참담함! 그럼에도 이 시대는 전 시대들보다 훨씬 풍요롭고 평화로우며 안전하고 민주적이라는 것이다. 통계는 분명 그렇게 말해준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희망이라는 불치병을 앓아야 되지 않을까?“영웅이거나 희생양이 아닌 그저 그런 소시민의 일상적 삶을 살 희망, 자녀들이 안전하게 등교하기를 바라는 희망, 임산부가 군 검문소 앞에서 죽은 아기를 낳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살아있는 아기를 낳기를 바라는 희망, 시인들은 피의 붉음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장미의 빨간색으로 노래하기를 바라는 희망, 이 땅이 본래의 이름, ‘사랑과 평화’ 그 이름을 되찾기를 바라는 희망”(팔레스타인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연설문에서 인용).

60여년 전 6월, 한국의 땅 곳곳에 뿌려진 붉은 피는 희망의 불치병을 유전병으로 남겨준 흔적이다. 한번 걸리면 결코 치유되지 않을 불치병, 희망을 안고 아직 품은 생각이 이루어지지 않은 그 땅을 위해 열병처럼 앓아보자. 사랑을, 평화를 위해 실컷 상사병을 앓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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