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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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땅 알래스카

2014-07-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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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교 시인

▶ 삶과 생각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왜냐하면 여행은 새로운 곳으로의 시작이며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최근 알래스카 여행에서 돌아왔다. 짐을 풀자마자 밥을 지었다. 이번 여행에선 최고의 산해진미를 다 먹었지만, 일주일쯤 지나자 슬슬 집 생각이 나고 갓 지은 밥에 송송 두부를 썰어 넣은 된장찌개와 김치 생각이 간절히 났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인 것처럼 한번 한국인은 영원한 한국인일 수밖에 없나보다. 미국에서 50년 가까이 살아도 한국인의 입맛으로 길들여진 미각은 좀처럼 변하질 않는다. 이번에 11박 12일 크루스 여행을 했는데 다른 어느 때보다도 음식이 좋았다. 그중에서도 칼라마리 스테이크나 입에서 살살 녹는 프라임 립과 알래스카 킹크랩은 최고의 음식이었다.

배에는 2,600명의 손님과 1,000명이 넘는 종업원이 탔으니 이들이 하루에 먹고 마시는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양일 것이다.


처음 도착한 항구는 주노로 이곳의 수도인데, 만년설로 뒤덮인 ‘멘덴홀’이라는 곳의 절경은 한폭의 그림 같았다. 요즘도 가끔 곰들이 내려와서 연어를 잡아먹는데 여름엔 곰들이 산 위로 올라가서 온갖 종류의 딸기들을 따 먹고 동면 준비를 한다고 했다.

다음 기착지는 ‘스캐그웨이’라는 어촌으로 여름엔 인구가 2,000명으로 불어나고 겨울엔 700명 쯤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겨울엔 온도가 영하 70도까지 내려간다는 고장을 작은 미니버스를 타고 산꼭대기까지 갔다. 가는 동안 아슬아슬한 낭떠러지와 산꼭대기에서 쏟아지는 폭포들이 가히 절경이었다.

나이 지긋한 운전사가 설명을 하는데, 그 옛날 금광이 터졌을 땐 많은 사람들이 금을 캤지만 운반할 수가 없어서 얼어 죽고, 굶어 죽었는데 그들이 타던 말들과 함께 죽어서 지금도 그 근처 골짜기엔 죽은 사람들과 말들이 수천구씩 묻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차가 생겨났고 금을 운반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아이러닉한가? 많은 금을 캤지만 가져갈 수가 없어서 금을 움켜쥐고 죽은 사람들의 욕심은,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돈만을 위해서 뛰는 현대인들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어느날 밤 문득 크루즈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이 너무 좋아서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둥그런 보름달이 떠있고 그 달빛이 태평양 바다 물결을 수놓은 듯 비치고 있었다. 그 광경에 취한 듯 한참을 서 있다가 이제는 저 세상으로 가버린 로라를 생각했다. 10년 전 나는 로라와 함께 알래스카를 여행했다. 그녀는 멋진 스카프를 날리며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바로 저런 베란다에 기대어 있었는데….

로라는 우리 딸의 시어머니로 그때 그녀는 바로 지금의 내 나이였다. 이제 또 십년쯤 뒤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우리 곁을 떠나도 이 망망한 바다와 산위에 덮인 만년설은 영원히 이곳 알래스카에 남아 있을 것이다.

마지막 기항지로 캐나다 땅인 빅토리아 섬에 도착한 날은 날씨가 화창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이곳엔 ‘부쳐 가든’이라는 유명한 가든이 있는데 이 세상의 모든 꽃들이란 꽃들은 다 모인 듯 장관을 이루고 있다. ‘부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재산으로 만들어 놓았기에 그 이름을 따서 ‘부쳐 가든’이 탄생했다. 이렇듯 이 세상은 자신의 재산을 남을 위해 쓴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져 간다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문득 ‘받은 복이 많도다’라고 말씀하신 목사님의 설교 구절이 생각났다. 이젠 그 복을 남을 위해 써야 할 때다. 어디선가 쇼팽의 감미로운 멜로디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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