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편읠 위한 변명

2014-06-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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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봉 수필가

젊고, 예쁘고, 살림 잘하는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나같이 재주 많고 알뜰한 부인을 사자성어로 무어라 하지?” 은근히 ‘금상첨화’란 칭찬을 기대하며 물었다. 남편은 멀뚱히 쳐다보다가 입을 연다. “자화자찬?”

아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다그친다. 남편이 조심스레 말한다. “과대망상?” 그러자 아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주문한다. “왜 ‘금’자로 시작하는 사자성어가 있잖아.” 남편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무릎을 탁 치며 대답한다. “아....금시초문”.

우스개지만, 남편들의 눈치 없는 대화법이 문제가 된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다. 남자는 상대방의 심중을 읽고 배려하는 대화에 약하다는 것이다. 대개가 자기주장을 일방적으로 쏟아 놓고 대화했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지난달 미국의 생명과학지(Live Science)는 「남편의 두뇌에 대해 여자가 알아야할 10가지」란 특집을 실었다. 로빈 닉슨이란 심리학자는 여자들이 남자의 타고난 심리를 모르는 데서 오는 문제가 크다며 남편들에 대한 변명을 조목조목 들고 있다.

우선 남자가 침묵하는 원인이 유전자 속에 있음을 이해하라고 한다. 동굴시대 남자들은 사냥을 나가 숨소리조차 죽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반해 동굴에 남아 집안일을 하거나, 냇가에서 식재료를 다듬던 여자들은 맹수의 접근을 막기 위해 함께 모여 일부러라도 큰 소리로 떠들어야했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데이비드 진젠코도 “왜 남자들은 아내에게 침묵하는가?” 란 글에서 남자들이 감정 표현에 익숙지 못함은 어릴 때부터 감정을 표출하지 않아야 강한 남성이라고 세뇌 받은 데서 기인한다고 했다. 대부분 남자들은 대화 도중 전혀 의도치 않았던 말이나 감정폭발로 낭패를 본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남자들은 대화보다 몸으로 때우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기분이 좋을 때도 말로 시시콜콜 설명하느니, 말없이 아내 차를 손봐주는 등 행동적 표현을 더 편해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아내들이 아플 때 남자들이 무관심하다는 것도 큰 오해란 것이다. 남자의 두뇌는 가족의 고통을 듣는 순간,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한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함께 아파하며 공감대를 나누기를 원하지만, 남자들의 DNA는 해결책을 찾는 게 급선무다. 그래서 일이 터지면 아내에게 화부터 내는 이유도 가장으로서 빨리 해결책을 찾아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유전자 속에 박혀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셋째, 남자들은 강해서 고독감 같은 것에 둔하다는 통념도 오해란 것이다. 특히 가장 고독감과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 부류가 중장년 남성이라고 한다. 은퇴기의 남자들은 수컷들의 영역 방어본능과 성취욕구를 박탈당한 상실감이 매우 크다고 한다. 그 사회적 무력감이 우울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가족 안에서도 중년남자들은 소외당하고 있다. 젊을 때 밖으로만 나돌다가 은퇴해서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를 가족들은 모두 서먹해 한다는 것이다.

나도 올 초, 미국 직장생활 32년 만에 은퇴를 하였다. 처음 2, 3개월은 대접을 꽤 받았는데 요샌 아내의 꽉 짜인 스케줄에 맞추지 않으면 끼니도 제대로 먹기 힘들다. 아내가 애완견처럼 종일 집에서 뒹구는 나를 서먹해하지 않도록 가사를 돕는 등, 새 활로를 찾는 중이다.

의사소통에 어눌하고, 쉬 외로움 타는 중년남편들에게 아내들의 속 깊은 아량과 부드러운 손길보다 더 소중한 게 없다. 그래야 남편이 오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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