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회화에 대한 몽상

2014-06-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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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준 / 화가

▶ 문화와 삶

박물관이나 화랑에 가서 그 공간에 조용히 서 있으면 그림이 나의 마음에 먼저 찾아오는 경우도 있고 또 내가 한 작품 앞에 서서 오랫동안 응시할 때 그림이 그의 깊은 세계를 내게 보여줄 때도 있다. 화가에게는 낮잠도 공부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대낮 꿈속에서조차 몽상과 환상을 갖는 것이 예술가인지 모른다.

나는 가끔 누워 이 세상에서 내가 보았던 그토록 많은 회화 작품 중 나에게 기쁨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던 그림을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때로는 깊고 숭고함에 내 영혼을 떨리게 했던 그림을 생각할 때도 있고, 또 화가의 개인적인 환상과 이미지 표현에 놀랐던 그림을 떠올릴 때도 있다. 헌데, 기쁨과 아름다움을 가장 강렬하게 느끼게 해준 그림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피치 뮤지엄에 있는 ‘비너스의 탄생’이다. 아니 그토록 여러 번 그 뮤지엄에 갔지만 오로지 ‘비너스의 탄생’만 기억에 남는다.

나에게 회화는 어떤 예술 장르보다 조용히 내 영혼에 접근해 그 화면이 떠나지 않고 머릿속에 머물러 있다. 회화는 헤겔의 말대로라면 비주얼아트 중 예술성에서 가장 위에 있다. 헤겔은 회화가 가장 위이고 둘째가 조각이며 셋째가 사진이라고 했다. 회화는 그림 속 이미지와 형상이 화가 자신의 완성된 세계를 보여준다. 헌데 3차원의 조각은 작품이 어떤 공간에 놓여있을 때 가시성의 공간이 많고 사진은 이미 존재하는 대상을 찍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대에는 시인을 예술가라기보다는 예언자라고 했다. 그만큼 시의 시계는 하늘의 은총으로 쓸 만큼 어려운 것이다. ‘비너스의 탄생’은 보티첼리가 40대가 넘어 그린 작품이다. 그 옛날 40대면 지금의 60대쯤 되었을 나이다. 회화는 정말 어렵고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오랜 시간을 연마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미와 진리를 알고 인생을 경험하고 느껴야 진정한 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며 그때야 정말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래서 60대는 젊은 예술가라 부른다. 그래서 나는 위안도 되고 희망이 있다.

헌데 젊었을 때는 왜 드높은 경지의 미는 알 수 없는 것일까? 신은 그의 영광을 깊은 곳에 숨겨 두었기에 이것을 아는 이는 어린애들과 천재뿐이며 우리는 오직 많은 것을 보고 또 보고 체험한 후 진정한 미를 알게 된다.

지금 이 시대는 컴퓨터 때문에 모든 것이 너무도 빠른 속도로 변하고 애기들까지도 계속 화면이 바뀌는 시대에 길들여지고 있다. 이 시대에 인내를 가지고 한 점의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해 너무도 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구하는 회화는 점점 급한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과 멀어져 간다.

요사이 미술대학에서 회화과는 점점 없어지고 개념미술과 설치미술 그리고 예술에 과학까지 접목시켜 관중들을 놀라게 하며 아이디어로 감탄시킨다. 헌데 요사이 전시회를 갔다 오면 놀라움만 있지 감동이 없다. 그리고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고요히 한 점의 그림 앞에서 한참을 들여다보며 작품과 가슴 뿌듯한 영적인 감동을 갖는 시대는 이미 지난 것일까? 그럼 과연 예술이 인간에게 주어야할 근원적인 힘, 즉 종교와 다른 또 다른 측면에서 미가 주는 구원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요사이 젊은이들이 다시 최초의 근원인 예술정신을 생각하며 좀 더 많이 회화를 전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행이란 시간이 지나면 유행으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생사를 넘나들던 시대에 살던 카잔차키스의 친구가 “내가 정말 어려운 환경에 처해서 인간다운 선택을 해야 할 때 죽음 앞에서조차 인간적인 선택을 한다면 그것은 램브란트 그림의 저 얼굴 때문일 거야!” 라던 말. 정말 이런 시대를 지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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