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 아버지에 그 딸”

2014-06-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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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창 / 뱅크 오브 더 웨스트 LA 지점장

북가주에서 이웃에 살던 남선생님과 그 딸 이야기이다. 몇 년 전 “따르릉!”하며 딸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빠! 하버드 됐어요!!” 신나는 음성이다. “그래 잘 됐구나.” “아니, 아빠 나 하버드 가는거 원하지 않아요?” “하버드 좋지.” “근데, 아빠, 음성이 별로 인 것 같아.” “그게 아니고... 아빠 생각에는 버클리도 좋은 것 같아서.”

아빠는 설명했다. “하버드에 비해서 버클리도 수준이 그렇게 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버클리 나와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다. 멀리 떠나는 것 보다 가까운 학교 다니면 가끔 집에도 올 수 있어 좋다”는 것이었다.


그는 허름한 집에 살면서 동네 근처에 있는 학교에 딸을 보냈다. 문제가 많은 학교였지만 딸은 옆길로 빠지지 않고 학교를 잘 다녔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UC버클리 지원 때 딸이 학자금 신청을 위해 부모의 세금보고서를 보게 되었다.

“아니, 아빠. 언제 이렇게 많이 벌었지? 그런데 왜 우리 이 동네 살지?”아빠는 선뜻 대답을 하지 않았다. 후에 딸은 아빠가 많은 돈을 교회에 내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은 토요다 코롤라 그것도 오래된 차를 끌고 다니면서. 하지만 지금도 그는 그 차가 자기한테는 최고라고 하면서 만족해한다. “좌우지간 고장이 안 난다니까.”

그에게 “가능하면 코-싸인 하지 마시라”고 수차례 권했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는 혹 누가 어려우면 도우려고 애를 쓴다. 얼마 전에도 어느 유학생 학자금 융자에 보증인으로 싸인을 했다고 들었다. 학자금 융자액은 몇 만 달러가 되는 데 당사자가 못 갚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어도 그의 대답은 한결같다. “학생이 공부하겠다고 하는데 그건 꼭 도와야지요.”

아무리 말려도 그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 뿐이 아니다. 전기 쪽 전공이라 툭하면 세탁소 운영하는 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곤 했다. 피곤한 상태에도 그는 곧장 그들의 사업체로 발길을 돌렸다.

딸은 하버드로 가지 않고 UC 버클리에서 도시계획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쳤다. 재학 중 딸도 봉사센터에 나가 이웃들을 열심히 도왔다. 그렇게 해서 졸업했는데, 당시 최악의 경기침체가 불어 닥쳤다. 타이밍이 나빴다. 일자리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마침 UC계열 대학에서 연구원을 뽑고 있었다. 두명을 뽑는 데 지원자가 500 여명. 일차, 우수연구원 후보 10명에 뽑혔고 마지막 심사에서 최종 합격자 두 명 중 한 명으로 뽑히게 되었다.


연구원의 임무 중 한가지는 연구 프로젝트를 분기마다 발표하는 것이었다. 한 번은 UC 계열 의 다른 대학에서 발표를 했는데, 발표가 끝나자마자 교수로 초빙하면 올 의사가 있는지를 물어왔다.

딸은 이번에도 아빠에게 의견을 물었다. 아빠는 “지금 있는 대학에서 좋은 기회를 주었으니 그 곳에서 맡겨진 일을 마치고 다음에 옮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권했고 딸은 그 권유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보면 확실히 둘이 닮은 것 같다. “그 딸에 그 아버지!” 아니,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둘 다 한결같이 ‘낮은 곳으로 내려와’ 겸손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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