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부 찬양

2014-05-09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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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창욱 정신과의사 / 볼티모어 MD

어머니날을 맞으며 어머니 생각을 하던 중에 어머니가 나에게 해주신 것을 도저히 다 열거할 수가 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내 어머니는 ‘주부의 전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C..S 루이스(C. S. Lewis)의 말이 생각난다. "주부의 직업은 이 세상에서 최상이다. 다른 직업은 한 가지 밖에 못한다." 루이스는 두 어머니를 모셨다. 자기 어머니와 한 전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전사한 그 전우의 어머니를 평생 모셨다. 그것도 노총각으로서 말이다.
1960년대의 여권신장 운동으로 여자들의 사회적 지위는 진보했으나 수입의 차이는 아직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 예를 들면 여자들은 대체로 보수가 적은 곳에서 종사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전통적으로 여자의 직종인 간호사의 경우도 남자간호사의 보수가 여자간호사의 그것보다 많다는 것은 어찌 된 것인가. 그 이유는 여자들의 출퇴근에는 변화가 많고 예측하기 어려울 때가 많으며, 임신 때문에 오는 직무의 중단, 가정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출근을 못하기 때문이며 거기에 따른 직장의 불편함과 추가지출 등 때문에 여자의 보수가 적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안전장치인 주부의 기능이 이 사회의 안전과 경제의 바탕이 되는 인원을 창출하는 가장 중요한, 아니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하며 그들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계산은 못하고 수입에 방해가 된다고? 주부는 가정이라는 사회적 단위에서 볼 때 주부의 직책과 간호사로서의 직책을 겸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주부로서의 생산력에 대한 보수는 없다. 주부로서, 어머니로서, 부인으로서, 딸자식으로서, 누이로서 하여야 할 수 많은 어려우면서도 중대한 그 노력에 보수가 전혀 없다.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그 문제를 아이의 어머니에게 떠 맡겨 버린다.
주부의 직업, 어머니의 직업은 돈으로 살 수 없으면서도 우리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함은 참으로 계산하기 힘들 만치 귀하며 중대한 것이다. 왜 주부냐고? 주부는 ‘주는(give) 부인’이라는 직업이다. 그들이 주는 이유가 보상을 바라지 않고 전혀 무보상의 사랑이라는 것에서 오는 본능이기 때문에 가식 없는 노력에서 나오는 생산력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얼마나 경제적으로 중차대한 지 불문가지다.
10여 년 전에 볼티모어 동쪽 애버딘 근처에서 큰 열차 탈선 사고가 있었다. 이 때 한 어머니가 넘어진 차안에 갇혀 있었다. 그녀는 조그마한 틈으로 손을 내밀고 “내 애기 받아주세요, 내 애기요!”라고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맨 먼저 하는 소리는 대개 “날 살려주세요"이다. 그러나 그녀는 ”내 애기 살려 주세요!“라 했다. 그 애기는 살았고 구조원이 그 어머니를 구하려고 갔을 때 그녀는 벌써 숨졌다. 참으로 돈으로 계산하지 못할 값진 모성애가 아닌가. 어떤 보수로 이것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소위 사회정의가 이것을 계산에 넣으려고 아이들을 어머니로부터 떼어 놓고 어머니를 직장에 보내어 돈을 벌게 한다. 이런 사회정의가 사회 평안을 감안하는지가 궁금하다. 아직도 종교는 이 점을 늘 걱정하고 있으니 좀 안심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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