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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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받아들여야 방황 끝나”

2014-05-0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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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양아 출신 융 에낭 감독 애니 유엔 상영

"엄마가 아이를 싫어하고 밀어내도 아이는 엄마를 사랑하게 마련입니다. 나는 여기서 태어났고 매번 한국에 올 때마다 ‘내 뿌리는 바로 여기에 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세계 입양인의 날’을 기념해 이달 16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특별 상영될 예정인 자전적 애니메이션 ‘피부색깔=꿀색’의 한국 입양아 융 에낭(49·사진·한국명 전정식) 감독의 말이다.

이 영화는 세계 3대 애니메이션 영화제인 안시(관객상·유니세프상), 자그레브(대상·관객상), 아니마문디(작품상)를 포함해 그간 세계 80개 영화제에 초청돼 22개상을 휩쓸었고<본보 4월18일자 A8면> 이달 8일에는 한국 개봉도 앞두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5세 때인 1971년 벨기에로 입양된 융 감독은 개봉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많은 입양아들이 결국 자신의 뿌리를 깨닫고 태어난 곳을 사랑하게 된다"며 애틋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는 "어렸을 때에는 한국이 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 보냈는지 화나고 슬펐다. 하지만 이렇게 태어난 나라를 부정하는 동안 내가 불행하다는 걸 깨달았다"며 "내 자신을 되찾으려면 뿌리인 한국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유럽에서 만화가로 이름을 알린 그는 자신이 벨기에에서 입양아로 자라며 겪은 이야기를 2008년 만화책(그래픽 노블)으로 출간한 뒤 이를 바탕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여기에는 그가 2009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서울에서 만난 풍경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과 양부모가 찍어준 어린 시절의 실사 영상이 프랑스 영화감독 로랑 브왈로와의 공동 연출로 결합됐다.

이 영화는 감독의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한국의 고아원에서 아이들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를 노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까지 남아 밥을 먹던 아이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벨기에 부모에게 입양된다. 감독은 자신의 가슴 시린 성장기를 소묘와 수채화 풍의 은은하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스크린에 펼쳤다.

입양 서류에 적혀 있던 이름 ‘Jung Sik’의 앞 글자 ‘정’을 양부모가 프랑스어 식으로 ‘융’으로 발음하면서 그의 이름은 ‘융’이 된다. 네 명의 아이를 두고서도 또 한국에서 입양을 한 양부모는 그에게 똑같은 사랑을 주지만 그는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으로서 가슴 한켠에 그늘을 키워간다. 다른 아이들 못지 않게 짓궂은 장난을 치며 형제,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도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는 ‘중국인’ ‘동양인’이라는 말은 그의 가슴을 할퀸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방황은 더 심해진다. 한국인이라는 뿌리를 거부하려는 심리로 일본 문화에 빠지기도 하고 반항을 일삼았다. 그러다 양어머니에게서 ‘썩은 사과’라는 모진 소리를 듣기도 한다. 알 수 없는 결핍과 그리움을 느낄 때마다 쌀밥에 매운 소스를 뿌려 먹다가 배를 감싸 쥐고 쓰러지는 장면은 그의 성장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웅변한다.

그는 자신과 비슷하게 입양이나 혼혈, 이주로 인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한국에도 있다면 "어떤 상황에 있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충고했다."저는 완전한 유럽인도 아니고 완전한 한국인도 아니지만 그 사이에서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많은 다른 입양아들이 정체성 혼란으로 힘겨워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는데 자신을 받아들이고 두 가지 정체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또 "아직도 한국의 미혼모들이 낳은 아이를 해외로 많이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런 해외 입양을 끝내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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