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친지도 벌써 10여년이 넘었다. 그런데 주말 골프인지라 늘지가 않는다. 나이 들면서 오히려 비거리가 줄었다. 왜 그럴까하고 고민하던 중에 문득 옛날 배운 물리학 공식 하나가 떠올랐다. “F = ma”.
뉴턴의 운동법칙이다. 즉, 힘(F)은 물체의 질량(mass)과 가속도(acceleration)의 곱(積)에서 나온다는 공식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비거리가 줄어든 게 골프공에 가속도가 붙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공을 힘껏 팔 힘으로 맞추려는 일념에 임팩트 후 오히려 속도가 떨어지고, 방향은 빗나갔다.
연습장에 나갔다. 골프채가 공에 닿는 순간 가속도를 붙여보았다. 공은 평소보다 훨씬 멀리 날아갔다. 그런데 비결이 또 있었다. 가속도를 붙이려고 무작정 휘두르는 게 아니라 공을 친 후 몸이 균형을 유지할 수 있어야했다. 이러한 가속과 균형을 함께 유지하려면 몸에 힘을 빼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코치들이 어깨에 힘을 빼고 하체의 큰 근육을 쓰라는 이유를 이제야 실감하게 되었다. 철 늦은 깨달음이었다.
뉴턴의 운동법칙을 생각하며 내 삶을 돌아본다. 인생에 가속이 붙어야할 때 온 몸에 허세가 잔뜩 들어 뒷 땅을 친 적이 얼마나 많았는가? 목표를 이루려는 무리한 욕심 때문에 몸이 풀리기는커녕 긴장된 상태로 살아가니 오히려 역효과가 날 뿐이었다. 인생을 사는 법칙을 찾으려면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맞다.
분명히 가속도는 속도와 다르다. 이 시대의 가장 불행한 일은 속도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인 양 항상 쫓기듯이 분주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마치 빨리 운전하느라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고 그저 목적지로만 내 달리는 운전자와 같다. 이들에게 운전은 빨리 가려는 수단 밖에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인생은 피곤하다.
반면에 가속도는 목표에 정확히 착지하기위해 적용하는 역동적인 삶의 기본 요소이다. 서둘러 과속을 내려면 몸이 굳고 땀이 나는데, 인생의 고비마다 긴장을 풀고 유연하게 가속도를 붙이면 좀 더디 가더라도 페어웨이로 뚫린 아름다운 세상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다.
속도가 남을 이기려는 동물적 본능에 바탕을 둔 일차방정식이라면, 가속도는 삶의 법칙을 이해하고 기본에 충실하려는 지혜로운 인간이 푼 미적분 방정식의 해답과도 같다. 가속도는 겸허하고, 절제력 있고, 균형 잡힌 삶의 자세에서만 나온다.
이제 지천명을 지나니 인생에서 목적지에 누가 빨리 가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게 보인다. 빨리 도달하면 빨리 내려오는 게 삶의 이치가 아닌가. 40대 중반에 기업 정상에 오른 동창들을 모두 부러워했는데 10년도 못가서 명퇴한 반면, 꾸준히 소임에 충실하면서 지금도 현역에서 영향력을 끼치며 사는 친구들이 더 활력이 넘쳐 보인다. 그래서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요, 나름대로의 정도에 있음에 공감한다.
균형 잡힌 삶의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내 인생후반기의 목표이자 꿈이다. 영과 육, 음과 양, 나와 이웃, 일과 휴식에 이르기 까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삶을 원한다. 겉으론 무언가 날마다 채워가듯 하나 심령은 속빈 강정처럼 허전하고 허무한 삶은 이젠 내려놓고 싶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나의 우월감에 자족하거나, 더 잘 사는 상대 앞에서 자괴감에 빠지는 속도전 인생은 이제 청산하고 싶다.
오히려 나의 연약함, 약점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주어진 처지에 감사하며 페어웨이로 걸어가면 내 곁에 비슷한 아픔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할 것이다. 우리는 삶에 지친 어깨에서 힘을 빼고 몸과 정신의 큰 근육을 써서 하루하루 성실하게 가속을 붙일 것이다. 페어웨이에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시다. 굿 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