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족하는 삶

2014-04-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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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수잔 / 수필가

▶ 여론마당

하루 종일 텃밭을 일구느라 남편은 이마에 땀이 송송 배어 있었다. 작년에는 3월말에 오래된 흙을 다 뒤집어엎고 고른 후 영양 있는 새 흙을 덮어 주는 일을 했는데, 올해는 4월 중순이 다 되어서야 하게 됐다. 조수노릇을 하고 있는 내게 뜬금없이 남편은 “내가 은퇴하면 우리 농사지으며 살까?” 한다. 주저함 없이 난 좋다고 했다.

채소를 심고 거두어 싱싱하게 먹으면 건강도 챙길 수 있고 자연을 즐기며 마음에 여유 있는 생활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다. 작년엔 손바닥만한 밭에 모종을 사다 심어 고추, 토마토, 상추, 깻잎 등을 심었었는데 제법 재미있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하면 얼마만큼 힘들지 한편으론 겁도 나지만, 가끔씩 다큐멘터리에서 보면 좋은 직장 다 버리고 시골구석에서 흙냄새를 맡으며 채소와 과일나무를 심고 가꾸며 행복해 하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우리의 삶은 꼭 돈이나 명예나 권력에서 행복을 찾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런던 타임지에 게재되었던 ‘가장 행복한 사람에 대한 정의’를 독자로 부터 모집한 내용을 보았는데 첫째 모래성을 막 완성한 어린아이, 둘째 아기의 목욕을 다 다키고 난 어머니, 셋째 세밀한 공예품 장을 다 짜고 휘파람을 부는 목공, 넷째 막 어려운 수술을 성공한 뒤 한 생명을 구한 의사를 들었다.

삶이란 순간순간 최선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본다. ‘농사의 농’ 자도 모르는 철부지가 씨를 뿌리고 싹을 내고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지켜보며 실수도 거듭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계절을 체험하고 인생을 배울 때 만족할 수 있는 삶이 되리라 믿어, 은퇴 후의 삶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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