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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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서울

2014-04-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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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여춘 / 시애틀지사 고문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서울은 5년만에도 몰라보게 변한다. 허허벌판이었던 변두리에 고층 아파트가 숲을 이뤘고 좁아 터졌던 도로들도 널찍해졌다. 예전에 없었던 터널도, 다리도 생겨났다. 강산만 아니라 하늘도 변하고 바다도 변했다. 하늘을 뿌옇게 덮은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써야 한다. 연평도 앞바다는 남북한 군대의 포격 시합장이 됐다.

강산이야 원래 눈부시게 변해왔으므로 놀랄 일이 아니다. 지난달 5년 만에 서울을 방문하고 강산보다 사람이 더 달라졌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퇴근시간 대에 전철을 탔는데 승객들이 거의 모두 나보다 컸다. 사람들 머리 때문에 천정에 매달린 전광 안내판을 볼 수 없었다. 내가 나이 들어 몸이 쪼그라든 게 아니라 서울 젊은이들의 키가 커진 것이다.

나는 중고등학생 시절에 늘 교실 중간쯤에 앉았다. 겨울엔 난로 부근이어서 좋았다. 출석부 번호도 60여 급우들 가운데 30번째 안팎이었다. 큰 축에도, 작은 축에도 들지 않았다. 군복무 시절인 20대 중반, 매주 헌병대 사열식을 위해 키가 가장 큰 녀석을 선두로 정렬할 때도 내 위치는 변함없이 중간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표준체격이었다.


내 운전면허증에 기록된 키는 30년 넘게 5피트 7인치이다. 한국식으로 ‘170cm 약(弱)’이다. 내가 LA 남가주대학(USC)에 연수 온 1979년만 해도 한국인의 평균키는 167.4cm였다. 나보다 작은 사람이 나보다 큰 사람보다 많았다. 그래도 USC 캠퍼스에선 거인 나라의 갈리버처럼 기가 죽었었는데, 30여년 만에 거꾸로 모국에 가서 그런 기분을 느끼고 왔다.

한국정부의 최신통계(2012년)를 보면 한국남자 평균키는 174cm, 여자는 160.5cm이다. 내가 쪼그라든 것처럼 느낀 것이 당연했다. 한 웹사이트는 한국인의 평균키가 화란(182.50)과 독일(180.2)엔 훨씬 뒤지지만 미국(175)과는 맞먹고, 일본(170.7), 중국(169.7)보다는 앞서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고 했다.

전철 안에서 더 희한한 광경이 눈에 띄었다. 남녀노소, 앉은 사람, 선 사람 구별 없이 거의 모든 승객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눈을 내려 깐 채 손가락을 분주히 움직였다. 5년 전엔 신문 읽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는데 이번엔 단 한명도 없었다. 종이신문과 TV 아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뉴스를 보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했다.

한국의 인터넷 인구는 작년에 4,000만 명을 돌파했다. 갓난아이와 고령 노인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국민이 인터넷을 이용하는 셈이다. 50대 장년의 인터넷 이용률도 80.3%나 됐다. 특히 한국 가구의 인터넷 접속률은 98%를 넘어서서 사실상 인터넷 완전보급 상태를 이뤘다. 박물관에나 어울릴 골동품 셀폰을 가진 승객은 전철 안에서 나 혼자뿐인 듯싶었다.

달라진 게 또 있었다. 전철역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사람들이 신통하게도 일렬로 줄을 지었다. 예전엔 상상 못한 광경이다. 시내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면 사람들이 일제히 달려들었었다. 택시도 ‘따따블(3배 요금)’을 외치는 사람이 우선 승차했다. 설과 추석엔 서울역이 아비규환의 전쟁터로 변했다. 질서의식 부재의 고질병이 어느새 확실하게 개선됐다.

땅 위에서도 달라진 게 보였다. 복덕방 간판마다 ‘원룸’ 아파트 광고가 대세였다. 가난했던 옛날의 셋방과 개념이 다르다. 내가 미국 연수 때 임대했던 ‘스튜디오’ 같은 방이다. 서울시민 중 1인가구가 24%, 부부가구가 23%여서 전체 가구 중 거의 절반이 2인 이하의 ‘미니가구’이다. 노총각과 홀아비, 노처녀와 ‘돌싱녀’들이 많아진 것도 달라진 풍속도였다.

거리의 젊은이들이 모두 ‘쭉쭉빵빵’이 된데다 서울 전철도, 시민들의 IT 능력도 세계 톱이어서 흐뭇했다가 서울 체류 마지막 날 기분이 30년 전으로 회귀했다. 대중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손님 대여섯 명이 소주를 마시며 식당을 전세 낸 듯 떠들었고, 다른 테이블에선 꼬마가 계속 울어댔지만 엄마가 모른 체 했다. 5년 후엔 그 역시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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