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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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아름다움

2014-04-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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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욱 / 뉴욕지사 객원논설위원

한 평생 인생을 살면서 가장 아름다워야 할 때가 언제일까.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자식들 다 키워 장가, 시집 보내놓고 황혼에 접어든 때가 아닐는지. 이때는 인생의 나이로 치자면 고희, 즉 70이 넘은 시기가 된다. 물론 법적 노인은 만 65세 이상이지만 지금 그 나이로 어디 가서 노인행세 하면 웃음거리밖엔 안 된다.

은퇴 후 시작되는 제2의 인생이라 할까. 노년의 시기가 아름다워야 인생의 종지부를 잘 찍게 된다. 72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검정고시(GED)에 합격해 대학에 들어갈 꿈을 가진 영자 도란씨. 영자 할머니의 노년은 대학갈 꿈에 젖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뉴욕 웨체스터 센트럴고교에서 GED공부를 시작, 지난해 12월 합격했다.

영자씨는 1969년 주한미군인 남편을 따라 도미한 후 자식 뒷바라지와 한국에 남아 있는 동생들을 미국에 초청해 그들의 정착을 도우려 2006년 은퇴 때까지 불철주야 일만해야 했다. 그는 은퇴 후 평생 한이 됐던 공부를 위해 GED를 시작했고 남편과 동생들의 도움으로 의젓한 미국 고등학교 졸업 자격증을 받게 된 것이다.


영자씨는 마냥 꿈에 부풀어 있다. 커뮤니티칼리지에 들어가 공부를 계속할 꿈, 그 꿈에 부풀어 그의 노년은 황혼이 아닌 만물이 용틀임하는 새 봄 같은 신선함과 약동으로 주위 노인들에게 용기를 선물하고 있다. “아직도 영어가 부족하다. 배우고 공부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시를 좋아해 언젠가는 영시집을 내고 싶다”는 영자씨.

89세의 노령에도 젊은이 못지않게 전국노래자랑을 쩌렁쩌렁 이끌어가고 있는 송해 할아버지. 송해씨는 좌절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실오라기 하나라도 간절하게 붙잡고 있으면 그것이 동아줄이 될 수 있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잡고 있는 그 줄이 굵어지라고, 바라고 노력하면 결국 굵은 동아줄이 된다”며 용기를 준다.

얼마나 아름다운 노년인가. 1983년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던 때 마음을 달래보자며 시작한 전국노래자랑의 사회자. 그가 고령이라 한 번 사회자가 젊은 사람으로 바뀐 적이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시청률이 떨어지기 시작한 거다. 결국 방송국에선 송해를 다시 불러 서게 했더니 시청률이 다시 회복됐다. 그는 신년 초 모 방송국과의 인터뷰를 통해 “남한테 물어보고 배우는 걸 수치로 생각하지 말고 항상 배우려고 노력하는 자세로 인생을 살아가라”고 덕담했다.

16년간 뉴욕 플러싱에서 야채 노점상을 운영해 온 이금안 할머니. 86세의 나이에 그가 베푼 선행은 뉴욕한인사회의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그는 최근 희망나눔 운동을 펼치고 있는 퀸즈 희망재단에 찾아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1만500달러를 기증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노점상에 나가 푼푼이 벌어 모은 돈이다.

그의 선행은 4년 전에도 있었다. 천안함 침몰사건 때 5,000달러를 숨진 한국 수병들의 가족을 위해 써달라고 기증했고 평생 못 배운 한을 풀어달라며 신학생과 초중고교생 7명에게 각각 1,000달러의 장학금을 선물하기도 했다. 희망재단은 1만500달러를 재단이 펼치고 있는 ‘희망나눔 국밥’ 대접에 거동이 불편해 못 오는 사람들을 위해 운영될 자동차를 구입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노년의 행보인가.

노년이 아름다워야 인생도 아름다워진다. 노년이 쓸쓸하고 고독하면 비참한 생으로 마감될 수 있다. 중년의 나이를 지나 노년이 되어도 소망과 미래를 잃지 않고 항상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결코 노인이라 할 수 없다.

72세의 영자도란 할머니. 금년에 커뮤니티대학에 들어간다. 들어가 더 공부하여 분명코 그의 생전에 영시집을 출간할 거다. 89세의 송해 할아버지. 건강이 허락하는 한 그는 전국노래자랑의 사회자 자리를 꿋꿋하게 지킬 거다. 86세의 이금안 할머니.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하는 희망전도사가 될 거다. 노년의 아름다움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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