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교인 칼럼] 김 숭 목사 l 자잘한 이야기들이 피워 낸 사랑

2014-04-02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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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3주 후, 미망인이 된 어머니, 임종 전 아버지를 뵙고 간호하기 위해 한국에서 방문한 두 누나들, 그리고 할아버지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멀리 이태리 로마에서 어린 딸을 품에 안고 온 질녀(큰 누나의 셋째 딸)가 집에 방문했다. 노약자와 세 살짜리 아이가 포함되었기에 이들이 북쪽 시애틀에서 여기까지 이동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나, 항상 같이 하던 남편이자 아버지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심으로 인해 뚫린 마음의 구멍을 메꾸기에는 꼭 필요한 여행이었다. 일종의 ‘상 뒤풀이’ 여행인 셈이다.

약 3년 반 전, 어머니는 수술대 위에 누우셨다. 장기에 이상이 생겨 하게 된 대수술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거의 돌아가실 뻔했다. 하지만 하나님 은혜로 목숨을 건지게 되었고 그 뒤로 전반적으로 심하게 약해지셨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토록 건강하시던 아버지께서 덩달아 약해지셨다. 수술 이후 회복을 위해 시애틀 다운타운에 있는 한 장기요양원에 계실 때, 아버지는 매일 그리로 출퇴근하셨다. 여러 대의 버스를 갈아타고 가는, 편도로만 무려 두세 시간씩 걸리는 길이었으니(실제로는 그리 멀지 않으나), 노인의 몸으로서 매일 그렇게 오가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내 생각엔, 그때 아버지는 심리적으로 이미 약해져 버리신 것 같다.

몇 개월 후 회복되신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러나 그때 같이 약해진 아버지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심한 호흡 불량, 줄어드는 식사량과 체중, 그리고 급격한 노화 현상이 그 후 아버지께 갑작스럽게 찾아든 증세들이었다. 그러시더니 그로부터 3년 반 후에 먼저 가셨다. 아내보다는 먼저 가야 한다, 이게 그분의 평생 기도제목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어머니가 먼저 아프셨던 것은 그 기도 성취의 문을 활짝 열어놓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시애틀의 형을 제외한 우리 삼남매, 어머니, 질녀, 그리고 며느리인 내 아내는 이번 한 주일 동안 서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특히 두 누나와 질녀는, 새벽기도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우리 부부를 빼놓은 채, 새벽 세 시 늦은 밤까지 격정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그 대화들은 우리의 눈시울을 적시게도 했다가 또 박장대소도 하게 해주었다. 다음날 무슨 이야기들을 했기에 그토록 깔깔댔는가 물어보면, 별 거 아니야, 우리 집안 잔혹사 이야기, 그리고 그때 나 그랬었어, 근데 그거 알고 있었어?, 주로 그런 이야기들이었다는 거다.

남자는 나 혼자뿐인 여인천하 자리여서 점잔빼고 싶은 마음도 들었으나 나도 가끔은 그 대화의 자리에 끼곤 했다. 나 역시 그 ‘잔혹사’의 중심을 차지하는 주연급 인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정작 우리들의 마음을 치유해주었던 대화 내용이 우리 중 누구나 다 알고 있던 잔혹사의 핵심 스토리보다는 오히려 그 이면에 숨어있는 자잘한 이야기들이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너무 없이 살아서였는지 누나들의 빨간 내복을 물려 입고 학교 갔다가 체육시간에 옷 못 갈아입었던 상처 같은 것, 그토록 배우고 싶던 바이올린이었는데 바이올린 하나 사달라고 졸랐을 때 어머니로부터 일거에 거절당했던 상처 같은 것, 이런 얘기들이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참 미묘한 존재다. 한바탕 크게 난리날 것 같다가도 한 순간의 계기로 금방 허물어진다. 그런데 그럴 때 곧잘 동원되는 것이 주로 자잘한 이야기들이다. 먼저 가신 아버지는 우리에게 그러한 자잘한 이야기들을 선물로 남겨 주셨고, 또 그런 이야기들로 함께할 수 있는 가족끼리의 만남도 허락해 주셨다. 여기서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 이야기는 자잘하지만 재회할 수 있는 가족은 결코 자잘하지가 않다는 진리다. 사랑은 세상사의 크고 작은 것들을 하나로 모으는 대단한 힘을 지닌다. 마치 큰 그늘을 제공해주는 한 여름의 거목과 같은 것이다. 문제는 나의 남은 삶인데, 아무튼 이번에 배운 사랑을 가지고 남은 인생 한번 잘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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