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겨울 편지

2014-04-01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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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애경

“눈은 하늘에서 오는 편지”라고 했던가! 펄 펄… 눈이 내리고 있다.
올 해 겨울은 눈이 참 많이 온다. 오늘도 함박눈이 눈꽃처럼 많이 쏟아지는 날, 모처럼 휴일 아닌 휴가를 즐기며 이층 창문가에 앉아 밖을 내다본다.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아직도 잎 새를 버리지 못한 저 나무…
무게를 견디지 못 해 점 점 쳐지는 가지를 바라보니 안쓰럽기만 하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 나무를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안타깝다고 해야 할지. 힘들었던 내 삶이 저 나무와 같았음을 떠올린다.
아무리 눈이 많이 와도 그 눈이 그치고 나면 햇살이 뿌려지기 마련이다.
대기 중에 머물러 있던 수분 덩어리가 다 쏟아져 내리면, 태양 빛이 대기를 통과하며 지상에 뿌려지는 자연의 섭리.
나의 삶에도 이러한 때가 있었다.
알아 볼 만큼 다 알아보고 확인을 하고 사업체를 샀건만,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다는 이유로 다 털어내듯이 맨 몸으로 나와야만 했다. 내가 살고 있던 주택에도 영향을 받게 되었다. 내 집이 없이 사는 동안에 참으로 힘들었다. 그렇게 두어 해를 지내며 광풍 같은 세월을 보낸 뒤, 한 장씩 한 장씩 벽돌을 쌓는 생활을 시작하며 작은 처소를 다시 마련하였다.
올 겨울은 눈과 함께 강풍이 몰아쳤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구석에서는 따뜻한 겨울을 지낼 수 있었다. 불황과 역경의 고난을 겪고 나니 이제 작은 것 하나가 소중하게 여겨지고 또한 어깨가 가벼워지니 비로소 햇빛이 정말 따뜻하다는 것을 체온으로 느낄 수가 있게 되었다.
대도시의 소음과 공해가 어디 자동차의 경적소리와 매연만이라고 탓 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밀집해 살며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어깨가 부딪치면 그 여파로 몸이 부서지기도 한다. 심은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다. 내 앞에 서 있는 가지 많은 나무가 아직도 가진 것이 많아 보인다. 모두 내려놓아야 저 가지가 제 자리로 올라갈 수 있겠건만.
청빈의 삶을 살고 싶어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운명을 또 어찌하랴…
가지 많은 나무는 부러지기가 쉽다는데, 또한 소유한 것이 많으면 고단할 수 밖에 없다는데…라는 생각을 해 본다. 심심상인(心心相印) 이라고 했던가!
나무는 세상의 이치를 아는가 보다.
입춘도 지나고 경칩도 지났다.
봄을 시샘하는 겨울바람이 극성을 부리던 며칠 전 어느 날 밤, 맑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집 주변을 걷고 있었다. 내 집에서 반짝이는 백열전구가 그날따라 유난히도 따뜻하게 보였다.
별 수 없이 물러가야 하는 추위에 따뜻한 봄기운이 밀고 다가오면 그 눈과 함께 멎었던 온 세상이 숨을 내 쉬겠지.
우리 집 지붕의 처마 밑에선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리겠고 여기저기에서 녹아 흐르는 맑은 물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오겠지.
옛 어른들이 알려 주시기를 눈이 오고 나면 거지가 옷을 빨아 입을 수 있다고 하셨다. 단벌인 거지가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빨아 입어도 따스한 햇빛에 거뜬히 추위를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따뜻한 날씨를 잘 묘사한 표현인 것 같다.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보니 함박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다.
하얀 두루마리가 하늘에서부터 펼쳐지는 듯하다.
궁금하다, 무슨 소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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