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미일 관계, 1905년과 오늘

2014-03-27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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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경모 건축가, MD

일본에 아베정권이 들어선 뒤 아베와 그의 고관들의 방자스런 언동과 미일간의 군사적 외교적 협력관계를 보면서 한국의 입장에 관하여 매우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1905년을 전후한 한미일 관계를 잠시 돌아보자. 1905년 미국의 국방장관 윌리엄 테프트와 일본의 수상 가쓰라 다로는 동경에서 소위 동양의 평화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비밀회담을 가졌다. 비밀에 붙여진 회담 내용은 1924년 타일러 데넽 교수가 ‘커렌트 히스토리’라는 잡지에 소개함으로써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중 우리에게 중요한 내용은, 조선을 그냥 내버려두면 조선이 앞을 내다볼 줄 모르면서도 다른 나라와 함부로 조약을 맺어서 동양의 평화를 깨뜨릴 염려가 있으니 조선을 일본의 보호 아래 두어 조선이 일본의 동의 없이는 외교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데에 일본과 미국이 합의한다는 조항이다. 그 대신 일본은 미국이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이긴 후에 얻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영향권을 인정하여 일본이 필리핀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때는 일본이 1898년 중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다시 1905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할 것이 확실해진 때이었으므로 미국과 영국이 간섭하지 않는 한 일본이 한국뿐 아니라 동양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할 수도 있는 형세였다.
미국의 어떤 분석가는 이 협약은 정식 외교협약이 아니었으므로 일본이 그 해에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5년 뒤인 1910년에 조선을 강점한데 대한 책임이 미국에게는 없다고 하면서 1882년 대한제국과 미국 사이에 맺은 한미수호조약에도 미국이 조선을 보호하기 위하여 군사력을 행사할 의무는 없었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이는 부분적으로만 옳은 말이다. 한미수호조약에는 군사적 개입 등 보호의무에 관한 조항이 없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조항이 들어 있다.
만약 다른 강국이 본 조약 당사국 중 하나에게 불공정하게 그리고 강압적으로 대해오면 본 조약 당사국은 그런 경우를 아는 즉시 ‘적극적으로 중재하여’ 호혜적인 형편을 조성함으로써 당사국에게 우의를 표시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의 외교권 박탈 의도를 분명히 알면서도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데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확인까지 해주었으며, 조선국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에 조선국에게는 외교권이 없다는 이유로 응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미국의 국익이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오늘날 한미일의 관계는 어떠한가. 심각성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겠으나 1905년 당시와 비슷한 점이 있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미국은 또 한국에 불리한 타협을 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미국은 지금 GDP의 400%에 가까운 국가 부채에 허덕이고 있으며, 아프간 전, 두 번의 이라크 전, 테러리스트에 대한 전투 등으로 지쳐있는 상태다. 또 중국과의 군비경쟁과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러시아와의 관계 등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난제들에 봉착해 있다. 2008년 발 금융위기는 미국 달러화에 대한 신뢰의 몰락과 함께 미국의 강대국으로서의 위치가 허약함을 확실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 해결책의 하나로 미국은 서양에서는 유럽의 협력을, 동양에서는 일본의 협력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일본은 이번 기회에 일본군의 해외파병 및 방어권의 확대 등에 미국의 동의를 얻어냈으며 한·중과의 영토문제,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오만방자한 작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미관계가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상태이므로 미국이 일본의 비위를 건드려가면서까지 한국의 권리를 보호해 줄 것인가. 노력은 해볼 것이다. 그러나 이해관계에 따라 그 이상은 안할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미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이용하는 것이다. 그 힘은 아마 언론 또는 로비일 것이다. 이들 방면에 전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나서서 질 높고 완성도 높은 논리를 개발해 중요 언론과 정치인들에게 계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최우방인 미국일지라도 우리를 돕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동북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전반적인 정책면에서 볼 때 위안부 문제나 독도 분쟁은 미국의 중요 관심사가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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