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중한 일상의 나날들

2014-03-19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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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수잔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젊어서 남편은 낚시를 좋아했다. 오클라호마 주엔 큰 바다가 없지만 강은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낚시광인 미국 친구와 함께 배를 타고 나가서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들을 소매 걷어붙이고 비늘을 긁어 굽기도 하고 튀기기도 하며 밥상에 올렸는데 그건 늘 내 몫이었다. 친구들과 소주 한 잔에 매운탕을 먹으면서 인생을 논할 때면 세상에 부러운 게 없다고 남편은 이야기하곤 했다. 나도 그 덕에 생전처음 큰 물고기를 낚아 봤는데 펄떡거리며 낚싯줄이 휘도록 달린 그 고기가 너무 무거워 배에 탄 친구들이 도와주어 가까스로 건져 올렸었고, 그때의 희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 팔 길이 보다 더 긴 메기였다. 그리곤 그 생선은 먹지 못했다. 파란 강물 속에서 눈을 뻐끔 거리던 그 물고기가 자꾸 어른거려 난 손을 댈 수 없었다. 결국 그건 미국 친구 집으로 보내졌고 그 이후 난 낚시를 중단했다.
며칠 전 몽고메리 카운티 티켓 관리처에서 벌금통지가 날아 왔다. 의아하기도 했으나 35마일 길을 50마일로 달렸다는 사진 속의 라이선스 플래이트는 틀림없는 내 차였다. 하필이면 수많은 사람이 지나는 길에서 내가 걸리다니… “하필이면 그 넓은 강, 많은 물고기 중에서 나를 잡다니… “갑자기 그 메기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눈 흘기며 말하는 내 모습까지 닮아 있었다.
긴 인생 여정에서 보면 슬플 때가 있는가 하면 가슴 설레는 기쁠 때도 있다. 중요한 건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까만 안경을 쓰고 보면 모든 게 흑색으로 보이고 녹색안경 속에선 모든 게 녹색으로 보인다. 생소한 길에서의 일이라 조금은 속상했지만, 생각해보면 그 구역은 커브도 심하고 조심해서 달려야 할 길인데 아무 사고 없이 달려 온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 아닌가? 나의 부주의로 인해 나만 희생되면 몰라도 남의 생명도 앗아갈 수 있는 게 운전인데....자신을 점검해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간들 이었다.
얼마 전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보살피며 쓴 딸의 글에 감동받은 적이 있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활달하고 명랑하던 엄마가 서서히 무너져 가는 것을 보며 마음이 찢어진다. 돌이켜 보면 엄마와 함께 하고 있는 이 인생여정에서 나는 매우 감사하고 있다. 기억상실, 혼돈 그리고 심각한 무기력의 이면에는 인생을 사랑했고 지금은 완전한 평화 속에 있는 한 아름다운 사람을 본다. 비록 내가 이런 인생행로와 이로 인한 눈물과 상심을 원한 건 아니지만, 이 순간은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진정한 사랑을 배우고 있다.”
인생에서의 고난은 자신이 어떻게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더 괴로울 수도 있고 더 밝은 희망을 안고 살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활동할 수 있는 건강 주심에 감사하고 아침에 호흡할 수 있는 신선한 공기를 주심에도 감사하자. 나이가 들면서 익숙한 길만 찾아 운전하고 편한 생활만 고수하는 타성에 젖어들고 있다. 자신의 인생에 겉돌지 않겠다는 다짐은 잊은 지 오래다. 남의 시선에 흔들리고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신이 아닌 남의 삶을 사는 탁한 안경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제 눈에 낀 탁한 안경은 벗어 버리고 선명한 눈빛을 찾아야 할 것 같다. 허락해주시는 생명의 날까지 사랑의 안경을 쓰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보람을 느끼는 일을 찾아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소중한 하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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