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딸 부잣집 넷째 딸이다. 어려선 오빠 있는 친구가 부러웠는데 지금은 그 친구들이 나를 부러워할 만큼 자매애가 남다르다. 서로 부족한 면을 감싸주고 채워주니 우리는 그냥 자매가 아니라 ‘꽃보다 자매’인 셈이다. 같이 적금을 부어서 해외여행도 함께 다녀온다.
누구의 아내도, 아무개의 엄마도 아닌 우리들만의 시간 … 그동안 가끔은 잊고 지냈던 내 이름으로 불려지고 한껏 들뜬 기분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어릴 적 함께 술래잡기를 하던 동네 어디쯤을 서성거리고 있다.
몇 년 전, 갱년기 우울증 때문에 도망치듯 언니들에게 달려간 적이 있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는 내게 언니들의 그늘은 피난처 그 이상이었다. 어느 날 오후, 맛 집을 찾아 서울 근교로 빠지는 순간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로 산이었다.
오랜 세월 잊고 지냈던 곳, 초등학생 시절 스케치북에나 그려져 있을 듯한 봉우리가 눈길 닿는 바로 그곳에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느낌으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늘 우리 가까이에 한결같은 모습으로 있어준 그 존재만으로도 고마워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때 언니들에 대한 내 마음이 겹쳐져 있었던 것 같다. 산이 거기에 있어 눈물 나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왔듯이, 내 인생에도 우리 자매들이 함께 있어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거라고. 그해부터 우리들만의 여행을 시작했다.
들뜬 마음으로 짐을 싸고 추억 만들기에 푹 빠져 꿈결 같은 일정을 보내고 나면 우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자고 화이팅을 외치며 아쉬움을 남긴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