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물의 철학

2014-03-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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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진 시인

고대 철학자 탈레스는 “물은 만물의 근원이며, 물은 물에서 생겨나고 물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지구상에서 생명을 기르는 것은 햇빛 물 토양 씨앗 그리고 노동력이다. 이것이 생명 보전의 5대 요소요, 하늘이 주는 인간과 자연을 향한 생명의 선물이다. 물은 열을 받으면 수증기가 되어 증발한 후 다시 비나 이슬이 되어 고향을 찾듯 지상으로 되돌아오고, 냉기를 만나면 얼음으로 변하였다가 녹으면 다시 물이 된다.

막았다 풀어놓으면 즉시 갈라진 자국 없이 하나가 되고, 폭포를 만나 뛰어내려도 깨지지 아니하며, 흙탕물이 되었다가도 다시 자정의 능력으로 청정수로 변한다.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깨끗하게 씻어주고, 바위틈을 가르고 샘물로 솟아 시내와 강을 이루며 목마른 생명들의 목을 추겨준다.


물은 겸손의 미덕을 보여주며 낮은 곳을 향하여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면서 도랑이 시내가 되고 시내가 강을 이루고, 종래는 바다에 이르면서 그 폭이 넓어지고 그 양이 크게 늘어난다. 겸손의 미덕이 물의 특징이요, 봉사의 정신이 물의 사명이다.

이를 보고 노자는 천지 만물 중에 가장 두렵고 힘이 센 것은 물과 대나무라고 하였다. 물은 갈라놓았다 합치면 흔적도 없이 하나가되고, 대나무는 휘었다 놓으면 곧 원형으로 다시 되돌아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맹자는 제자들에게 물을 보고 물에서 덕을 배우라고 일렀다. 물은 흐르다가 그 앞에 웅덩이를 만나면 아무리 갈 길이 급하고 웅덩이가 클지라도 반드시 채우고 난 이후에 넘쳐나서 앞으로 나간다는 영과이진(盈過而進)의 철리를 이른 것이다.

물은 겸손과 순종과 질서의 상징이다. 그러나 과하게 넘치면 때로는 노도가 되어 자연을 파괴하고 생명을 살상하고 재물을 쓸어버리기도 한다. 이는 마치 불이 강해지면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태워버리는 화마가 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물은 불을 끄고 불은 물을 끓이는 철리도 알아야하고 약한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바위를 뚫는 인내도 배워야 한다. 석간수(石間水)로 시작하여 세심천(洗心川)의 맑은 시냇물로 변하면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죽은 물고기는 물에 떠내려가는(生魚逆水 死漁流水) 진리도 깨달아야 한다.

녹수청강(綠水淸江)과 장강대해(長江大海)를 눈앞에서 바라다보면서도 돌같이 오래살고 샘같이 재산이 많기를 바라는(石壽泉資軒) 욕망을 내보이는 것이 곧 인간의 마음이기도 하다. 산은 겹겹이 쌓이고 물이 그 사이를 굽이굽이 흘러가는 정경을 바라다보노라면 마치 세상 인간사를 대하는 듯하다. 내가 평생 스승으로 모시고 존경하던 철학자 이당(怡堂) 안병욱 선생님께서 내 농장을 방문하시고 손수 써주신 세심정혼(洗心淨魂)의 네 글자를 보면 임께서 타계하신 오늘에도 생존의 모습이 절절하다.

스승은 성실한 제자를 맞이할 때 보람을 느낀다. 선생님께서는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가르치실 때 두뇌가 명석하여 학업성적이 뛰어난 제자들을 사랑하셨는데, 학창시절 학업성적은 좀 떨어졌어도 근면하고 성실한 제자가 사회에 나와서 더 큰 인물로 성장한 것을 보시면서 과거의 생각이 잘못 되었었구나, 후회하셨다고 했다. 명심보감에 보면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지 아니하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따르는 자가 없다(水之淸則無魚 人之察則無徒)”고 하였다.

물이 빈곳을 채워 수평을 이루듯 국가는 수요와 공급에 형평을 이룩하고, 건강한 사회를 형성하기에 전력을 다하여 복지사회를 이루어야한다. 그래야 모든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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