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산을 쓴 자두나무

2014-03-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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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미자 / 수필가

전 주인이 언덕바지에 심었던 두 그루의 자두 고목이 물 부족과 영양실조로 몇 해 전 죽어버려 다시 사다 심었다. 나무가 제법 자라 막 꽃봉오리를 터뜨리며 진한 매화향기 같은 향기를 내뿜어서 나는 코를 킁킁거리며 날마다 맡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주 폭우가 온다는 소식이었다. 봄은 늘 그랬다. 과일나무의 꽃이 피어있거나 피려고 하면 비를 뿌렸다. 건조한 남가주에서 비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하필이면 과일 꽃이 피는 즈음에 내리곤 했다. 세상사에서 반드시 우리가 만나야 하던 심술쟁이처럼 말이다.

몇 년 만에 눈송이처럼 하얗게 피어나는 자두 꽃을 매일 쳐다보던 나는 비가 온다고 하자 자두 꽃을 걱정하게 되었다. 우산을 씌울까 궁리하며 남편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그도 내 속마음을 알았다는 듯이 우산을 씌우잔다. 부부가 40여 년 한집에서 한솥밥을 먹고 살아서일까. 어쩜 신기하도록 그리 똑같은 생각을 한단 말인가.


남편은 접어두었던 커다란 우산을 당장 가져와 세웠다. 일기예보처럼 낮에는 잠시 해가 보이다가도 금방 구름이 끼고 비가 내렸다. 밤이면 어김없이 폭우가 쏟아졌다. 창밖에 흘러내리는 반가운 빗소리는 음악처럼 들렸고 메말라 죽어가던 쑥갓들이 고개를 싱싱하게 쳐들었다.

하지만 나흘 동안 연일 비가 내리자 산 아래 주택가는 물길이 범람하여 산사태가 날까 봐 대피령까지 내려졌다. 집 근처 앞마당이 세찬 물길이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연중 필요한 강우량의 거의 절반 정도가 한꺼번에 내렸다고 한다. 농업을 하는 사업가들에게는 물 걱정을 덜어준 고마운 비다. 비가 안 와도 걱정, 와도 걱정인 우리네 삶.

나는 커다란 우산을 쓴 자두나무를 매일 찾아가 문안 인사를 드렸다. 바람에 우산이 넘어지지는 않는지, 꽃들이 무사히 달려 있는지. 신기하게도 비가 멈추면 우산 속 자두나무에는 벌들이 찾아와 신이 나게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니며 잔치를 벌이듯 꿀을 나르고 있다.

여름이면 달콤한 자두를 한껏 맛볼 수 있겠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지난해처럼 야속하게 몇 개만 열리지는 않겠지. 우산을 쓴 자두나무를 보며 우리 부부는 창가에 서서 날마다 허허 많이도 웃었다. 내 키만큼 자란 자두나무가 무지개 빛깔 우산을 쓰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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