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속초 그리고 설악산

2014-03-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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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벗어나 속초로 가는 길은 생각 외로 탄탄대로였다. 1월의 찬바람이 싸늘하게 뺨과 온몸에 달라붙어 한국의 겨울을 실감나게 했다. 바바리 깃을 바짝 치켜 올려 머플러를 꼭 동여매었다.

선친의 전집 출판 기념회를 무사히 치르고 나니, 모처럼 모인 형제들끼리 여행이라도 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고 그래서 1박2일로 무작정 떠났다. 우리 6명은 밴을 빌려 남동생이 운전하는 대로 태백산맥을 뚫어 더욱 빨라진 진부령, 미시령 터널을 지나 속초로 향했다.

한겨울의 눈이 희끗희끗 양 도로 옆으로 녹아 있고, 나무걸이에 촘촘하고 빼곡하게 걸어 말리는 황태들이 한없이 이어진 광경이 퍽이나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황태는 12월과 4월 사이에 주로 말린다고 한다.


숙소로 잡은 한국 도로공사 연수원은 나무숲 사이에 지어진 아담한 2층 건물로, 온돌은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이부자리, 식사 용기와 식탁과 더불어 간단한 조리시설도 갖춰 놓았다.

우리는 속초의 바다를 구경하러 밖으로 나왔다. 일찍 찾아온 어스름을 감싸고 유유히 흐르는 겨울 저녁 바다는 하얀거품을 침묵의 무늬로 차갑게 조금씩 밀어 내면서,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는 무인등대를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아득히 멀리 태평양 건너 산타모니카 비치가 아련히 떠올랐다. 바다는 오랜 세월 떠나 있음으로 야기되는 모든 문화의 차이를 덮어 주며 이해하라고 자꾸 일러 주었다.

바닷가 주위의 포장마차에서 새우, 오징어 튀김, 오징어순대를 사 먹으며 바다의 냄새도 함께 물씬 마셨다. 그리고 함경도 실향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의 아바이 순대집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에는 그동안 다녀간 배우와 유명인사 사진들이 벽에 쭈욱 붙어 있었다. 모듬 생선회, 황태찜, 가자미 식혜, 순두부, 산채비빔밥을 시켜 놓으니 속초의 저녁과 밤이 알차게 흘러갔다.

속초는 강원도 동해의 도시, 남쪽은 양양군, 북쪽은 고성군, 동쪽은 동해에 접한 항구도시이다. 설악산과 해수욕장과 비행장이 있으며, 주문진, 울릉도와 더불어 오징어가 많이 잡히고 명태, 청어 어획량이 많다. 화랑의 전통을 이어가며 무술 수련장으로 유지되고 있는 속초의 영랑호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 나 있다.

설악산은 흰 눈을 어깨에 덮고 조용히 고즈넉하게 펼쳐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올랐다. 한 줄은 백색으로 눈이 덮였고, 한 줄은 은은하고 짙은 녹색으로 가지런하고 얌전하게 평행선으로 서 있는 나무들. 그림, 그 자체였다.

마지막으로 설악산을 찾은 게 어느새 4반세기 전이었다. 자연은 그때 그대로 묵묵히 그윽하고, 간간이 흩날리는 눈송이 가운데 아버지, 어머니, 큰 오빠의 얼굴들이 함께 겨울 산을 끌어안고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 산 40년 세월, 이리저리 어지럽게 지난 추억들과 후회, 못다 한 도리, 의무가 겹쳐져 머릿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형제들이란 오랜만에 만나서 별 말없이 같이 식사하고 구경하고, 웃으며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푸근함이 전해지는 그런 사이. 짧은 만남은 언제나 그렇듯이 진한 그리움과 애틋한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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