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민 1세와 애국심

2014-02-28 (금)
크게 작게

▶ 최용완 / 사랑방 글샘터 회장

소치 올림픽이 끝났다. 올림픽 경기를 보고 있으면 본능적으로 애국심이 발동한다. 선수들은 4년 동안 갈고 닦은 체력과 기술로 세계의 정상에 도전하고, 마침내 정상에 이르면 그 나라의 국기가 오르고 국가가 연주된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정치적 갈등을 잠시 잊는 평화와 화합의 장이기에 올림픽 기간 중 모두가 즐거웠다.

이번 올림픽을 보면 경쟁종목이 다양해지고 운동기구와 설비의 발달로 스포츠 과학이 한몫을 했다. 운동 종목에 따라 일등과 이등의 차이는 사람의 눈으로 식별할 수 없을 만큼 미세하여 첨단 기계에 의존하여 판별이 되기도 했다. 3등과 4등은 차이가 거의 없지만, 3등은 시상대에 올라 메달을 받고 4등은 경쟁에 참가한 영예로만 만족해야하는 것이 규칙이기에 긴장하며 보는 재미가 컸다.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체구가 작고 체력이 약한 동양인들이 서구의 장신 선수들과 시합을 하면 어른과 아이의 경쟁처럼 보였다. 오래 전 오하이오의 콜럼버스에서 세계 고등학교 야구시합의 마지막 경합이 있었다.


일본과 브리질 팀을 각각 꺾은 한국과 미국의 선수들이 결승에 이르렀다. 고등학교 후배인 선동열 투수를 앞세워 한국팀이 결승전에서 미국 팀을 이겼던 날에는 온가족과 동포가 목이 쉬도록 응원하였다. 좁은 우리 집에 몰려와 냉면 을 먹으며 승리의 축배를 들었던 때가 엊그제 같이 기억된다.

반세기 지나는 사이 세계의 경제 구도가 변하고, 이제 한국의 경쟁력은 어디에나 내놔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보라는 듯 국력 상승을 뽐내어 보여준다. 월드컵 경기 때 서울광장에 모여 뜨겁게 응원하던 붉은 악마의 열기는 우리의 자랑이었다.

경기를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흥분과 설렘, 감동의 짜릿함은 타고난 우리의 본능적 경쟁의식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태어남 자체가 경쟁이다. 수억의 정자들이 필사의 경쟁을 하여 제일 먼저 도착한 정자 하나가 난자의 품에 안기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우리는 태어났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금메달을 목에 걸고 세상에 왔다. 그래서 목숨은 그만큼 소중한 가치와 존엄성을 갖는 것이 아닐까.

정당한 경쟁은 사회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기에 국민들이 경쟁하지 않고 정부에 의지하던 구소련은 무너졌다. 경쟁 사회에서 승리하면 명예와 물질적 혜택이 돌아온다. 이런 동기 부여로 생산의 질과 양이 성장하여 국가와 사회가 발전한다.

후진국에서 태어난 우리 세대가 선진국에 이민 왔을 때 균등한 경쟁의 기회가 있었기에 언어와 문화의 격차를 극복하고 각자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요즘 도로에서 현대나 기아차를 보면 친구처럼 반갑고, 벽에 붙은 삼성이나 LG의 TV를 보면 가족 얼굴을 보는 듯 기쁘다.

이민 1세들은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사느라 고생이 많았다. 외로움에 이불 덮고 흐느꼈고, 해바라기처럼 모국에 살아계신 부모님을 생각에 밤을 지새웠다. 내 나라 내 민족에 대한 그리움, 가족 친척 향기 물씬거리는 고향 생각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기에 올림픽 때면 한국 선수들의 메달 소식이 그렇게도 반가운 가 보다. 시상대에 태극기 오르고 애국가 울리면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아! 대한민국, 인류의 앞길에 평화의 횃불 밝혀 올려라.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