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알바트로스의 넋

2014-02-22 (토)
크게 작게

▶ 김희봉 / 수필가

알바트로스(Albatross)의 일생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세상에서 제일 크고, 가장 멀리 나는 새, 알바트로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란 격언은 대형 갈매기를 닮은 이 바닷새를 묘사한 유명한 말이다.

다큐 카메라는 바람 거센 남반구 대양의 창공을 유유히 날며 오징어와 생선을 잡아먹고 사는 알바트로스를 용케도 따라다닌다. 북미에 사는 우리에겐 좀 낯설지만 그 크기와 엄청난 활공거리로 인해 뱃사람들에겐 살아있는 신화로 알려진지 오래다.

알바트로스 종류 중에서 가장 큰 ‘방랑자 알바트로스’는 양 날개를 펴면 폭이 3 - 4 미터나 된다고 한다. 황금 독수리도 이 곁에 서면 왜소해 보인다. 눈부시도록 흰 몸체에 길고 유연한 날개로 활공하는 알바트로스의 모습은 당당하고 장엄하기까지 하다.


알바트로스는 먹이를 찾아 지구 반 바퀴의 거리도 거뜬히 돈다고 한다. 한 여정에 근 만 마일까지 비행하는 것이다. 하루 평균 500-600마일을 시속 50마일로 난다고 알려져 있다.

알바트로스가 상상을 초월하는 거리를 날수 있는 것은 바람 타기의 명수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람과 파도를 이용한 역동적 활공법을 구사한다.

초월적 능력을 가진 알바트로스를 옛 사람들은 영물(靈物)로 보았다. 죽은 뱃사람들의 넋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새를 죽이면 평생 목에 재앙을 두르고 살아야한다고 믿어 살생을 삼갔다.

동양에서는 알바트로스를 신천옹(信天翁)이라 불렀다. 사람 모습을 연상한 것이다. 알바트로스의 생태를 깊이 알수록 사람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사람만큼 장수한다. 수명이 50 - 85년이나 된다. ‘하늘의 뜻을 믿는 노익장 - 신천옹’이란 칭호가 제격이다. 게다가 수컷이 천생연분 짝을 찾는 노력은 집요하고 낭만적이다. 개성미 넘치는 춤사위로 구애하는데 결혼하면 백년해로한다. 그런데 일단 부부가 된 후엔, 수컷이 연애시절 추던 춤 따윈 다시 추지 않는 것도 사람과 꼭 닮았다.

부부 새는 일년에 알을 딱 하나만 낳는다고 한다. 새끼를 낳으면 부부는 번갈아 잘 삭힌 음식을 토해내 먹이며 극진하게 돌본다. 이들에게도 자식농사가 사람들 만큼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는 멸종위기에 처한 알바트로스들의 실상을 보여준다. 예전엔 밀렵꾼이나 서식지를 침범한 들쥐나 고양이떼 때문에 수난을 겪었는데, 근래엔 모두 인재(人災)란 것이다.


우선 어부들이 바다한가운데 쳐놓은 긴 낚싯줄에 수없이 죽어간다. 낚시 끝에 달린 미끼를 덥석 물었다가 걸려 익사하는 알바트로스들의 모습이 처참하다. 이보다 더 심각한 요인은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이인 줄 알고 삼켰다가 질식하는 것이다. 토해놓은 먹이를 먹은 새끼들까지 죽어간다.

알바트로스는 오랫동안 객지를 떠돌다가도 새끼를 낳을 무렵이면 꼭 옛집을 찾는다고 한다. 인간들처럼 귀소본능의 영물인 것이다. 그런데 카메라는 고향에 채 닿지 못하고 플라스틱 쓰레기에 질식사한 수많은 시체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바다한가운데 낚싯줄에 묶여 퍼덕되는 이들의 슬픈 눈망울을 줌인하고 있다.

사람보다 더 군자 같은 신천옹, 알바트로스들의 넋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그 업보로 우리 인간들 목에 걸릴 재앙이 두렵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