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직은 살만해!”

2014-02-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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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교 / 수필가

한국사람들의 평균 건강나이가 65세라는 보고가 나왔다. 건강 나이는 병 없이 아프지 않고 사는 나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10여년 가까이 몇 가지 지병을 갖고 골골 대며 산다는 것이다. 아무리 수명이 늘었다 해도 병을 가지고 살면 삶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삶다운 삶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수명은 늘었으나 그것이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주위를 돌아보아도 모두 두세 가지 약들은 챙겨 먹는다. 콜레스톨이나 혈압 등의 약이 없었다면 이미 세상에 없었을 목숨들이다.

우리 어머니도 나이 50에 뇌졸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 형제들 모두가 혈압약을 먹고 있다. 오빠는 몇 달 전 유명을 달리 했고 80대인 언니 둘은 비교적 건강하다. 나도 70대 중반이지만 건강한 편이어서 건강나이가 평균보다 10년 이상 늘어 난 셈이다.


내가 살고 있는 라스모어라는 지역에서 통계를 냈는데 현재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76세이고 죽는 사람의 평균 나이는 91세라니 그야말로 장수촌이다. 좋은 공기, 좋은 물, 적절한 운동 그리고 음식들을 골고루 좋은 것만 골라 먹는 편이니 장수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 같다.

매일 아침 나는 언덕길을 천천히 10여분 걸어서 육통권이란 운동을 하기 위해 힐사이드 클럽에 간다. 길옆에 자목련들이 꽃봉오리를 터뜨리며 황홀한 모습으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연발하며 잠시 동안 그 아름다움에 매료 된다. 이런 때 나는 “아! 아직은 살만해!”하고 외치며 행복감을 만끽한다.

운동에 40여명이 나오는데 한인들이 거의 20명을 육박하기 때문에 백인들과 중국인의 숫자를 거의 능가하게 되었다. 뿌듯하기도 하고 약간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운동이 끝난 후 커피샵으로 몰려가서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앉아서 수다들을 떠는데, 이렇게 스스럼없이 때때로 만나고 토론하고 놀 수가 있다는 것이 큰 축복임을 깨닫는다. 혼자 웃는 것도 좋지만 함께 웃으면 엔돌핀이 몇 배나 더 증가한다고 한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정말 실감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어떤 사람이 부자의 기준을 300만 달러라고 했다. 나는 건강, 적절히 쓸 수 있는 돈, 할 수 있는 일과 주변에 친구들이 있으면 부자라고 말하고 싶다. 나이 들면 과거에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현재 건강상태가 좋고, 밥 먹을 만하고, 자식들이 속 썩이지 않고, 마음 편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늙어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아직도 내 손으로 밥해 먹고, 가끔 이웃 친구들을 불러서 함께 맛있는 것을 해 먹을 수 있고, 내 다리로 걷고, 좋은 책들을 돌아가며 읽을 수 있는 지적인 열정이 남아 있다면, 또 믿음이 있어서 마음속에 평화가 있다면, 이만하면 아직은 살만하지 않은가.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무엇을 할까 생각하며 천천히 뜨거운 커피를 만들어 마신다. 아침에 눈을 떴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며 무엇을 할까를 고민할 수 있는 것이 작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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