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홍난파는 도꾜의 우에노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노래로 표현하였는데, ‘울 밑에 선 봉선화’를 처녀작으로 ‘그리움’, ‘봄 처녀’, ‘사랑’, ‘고향의 봄’등 불멸의 명곡들을 남겼다. 그의 노래들은 해방 전 나라를 잃은 남, 북한 동포들의 가슴을 울려준 명곡들이었다.
‘봉선화’는 3,.1 독립운동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20년에 발표되었는데, 일제는 이 노래를 조선의 독립을 조장하는 노래로 규정하고 온 국민이 부르지 못하도록 금지해 버렸다.
이 노래가 ‘봉선화’로 된 데는 가슴 아픈 애절한 사연이 있다. 난파가 우에노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수원에 있는 그의 고향 마을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 어린 시절 그를 오빠로 부르며 무척이나 따르던 봉선이란 아가씨가 아버지를 여의고 생활고에 못 이겨 일제의 방직 공장으로 팔려 가는 날이었다. 봉선 이는 난파의 집에 봉선화를 심어주며 난파를 무척 따랐다. 난파는 그런 봉선 이를 친 누이처럼 아껴 주었는데, 고향을 떠나면서 난파에게 마지막으로 난파의 바이올린 연주를 부탁하였다. 이 애절한 사연을 접한 난파는 봉선이가 떠날 때 적당한 곡이 없어서 아리랑을 연주해 주었는데, 연주를 끝낸 후 갑자기 악상이 떠올라 봉선 이를 앞에 두고 연주한 것이 바로 ‘봉선화’였다. 민족의 처지와 봉선이의 처지에 참을 수 없는 감정이 북받친 난파와 봉선이, 배웅을 나왔던 동네 사람들이 이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일본의 총리 아베는 국수주의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국영방송인 NHK의 수장도 자기 사람을 심어놓고,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인 침략 만행을 부정하고, 헌법을 고쳐 제국주의 부활의 기치를 내걸고 세계 각국을 순방하며 일본의 군국주의 미화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3.1절이 며칠 남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국력은 현실적으로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지원국으로서의 입지를 확보한 일본 정부를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역부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항일정신’으로 공동 무장하여 아베 정부에 대응해야 한다.
남, 북한의 동질성 회복과 통일의 시기를 단축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에게 나는 세 가지 방안을 사용토록 제안하고 싶다.
첫째, 정부가 주관하여 ‘봉선화’ 악단을 만들어 8.15 해방 전에 남, 북한 국민들이 애창했던 명곡들을 모아서 원로 가수들과 함께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공연한다.
둘째, 정부가 주관하여 남, 북한 영화인들이 선정한 해방 전 영화인 ‘아리랑’을 비롯한 남, 북 배우들이 함께 출연한 명화들을 다시 제작하여 남, 북한 지역에서 공연한다.
셋째, 독도를 일본의 영토라고 왜곡하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남, 북한이 한반도 수호 정신으로 뭉쳐 공동으로 ‘ 배일운동’을 지속하며, 일본상품 불매 운동도 함께 펴 나간다.
3.1 독립 기념일을 맞이하여 남, 북한 땅에서 ‘봉선화’ 악단이 연주하는 ‘울 밑에 선 봉선화’ 노래를 들어볼 날을 손꼽아 가다려 본다.